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黨 밖 강자들의 존재, 정세균은 불안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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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운데)가 2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강래 원내대표(맨 오른쪽)와 박주선 최고위원 사이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우리 민주당 앞에 큰 제방이 가로막고 있다. 이름하여 ‘강래 제방’이다.”
지난 8일 밤 서울 여의도 한 해물탕집에서 기자들을 만난 수도권 출신의 민주당 386 재선 의원은 이강래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렸다. 이날 낮 국회 국토해양위에서 한나라당이 4대 강 예산안을 기습 처리해 버린 상황에서 민주당 원내지도부가 예결특위를 일단 정상 가동키로 결정하자 ‘분노’를 표시한 것이다. 이 의원은 “전날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에서 이낙연 위원장이 4대 강 관련 예산안을 통과시킨 지 하루 만에 당의 이탈이 재연된 것”이라며 “4대 강 예산은 예산 투쟁의 ‘본좌’인데 이 원내대표가 이렇게 허무하게 내줄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세균 대표의 핵심 측근인 이 386 의원은 이튿날인 9일 강기정·최영희 등 강경파 초·재선 의원들과 함께 이 원내대표를 찾아가 예결위 보이콧을 요구했다. 이날 오전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박주선 최고위원도 이 원내대표에게 직격탄을 쏘아댔다. “말로는 위법 행위라면서 예결 심사에 참여하는 모순이 어디 있나. 한나라당의 위법 행위에 동조하는 ‘공범자’가 될 셈이냐.”

말없이 듣고 있던 이 원내대표는 회의가 비공개로 전환되자마자 “공개석상에서 그런 발언을 꼭 해야 했느냐”며 박 최고위원에게 항의한 뒤 회의장을 나가 버렸다. 이후 이 원내대표에 대한 남은 당직자들의 공격은 계속됐다. 박지원 정책위의장은 “원내대표단이 우왕좌왕해선 안 된다. 타협할 것은 타협하더라도 원칙적인 것에 대해서는 싸워야 한다. 예산안마저 당한다면 모든 걸 다 잃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정세균 대표를 향해서도 “비상 시기에 지도부가 국회를 지키지 않고 나돌아 다니면 말이 되느냐”고 꼬집었다. 박 의장은 10일 원내대책회의에서도 같은 주장을 반복했다. 그러자 이 원내대표는 “프로세스를 좀 알고 그런 말을 하라”고 쏘아붙였고, 박 의장은 “뭐라고”라며 언성을 높여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다고 한다.
그러나 이날을 기점으로 이 원내대표는 강경 노선으로 급선회했다. 그리고 일주일 만인 17일 민주당은 예결위 회의장을 점거했다. 2년 연속 ‘연말 국회 파행’의 소용돌이는 이렇게 시작됐다.

“鄭 대표, 뚜렷한 전략이 없다”

예산정국의 급랭을 부른 민주당의 강경화는 지도부의 고질적 불협화음에 따른 부실한 의사 결정의 대표적 예로 꼽힌다. 지도부가 불협화음을 내는 데는 1년 반에 접어든 ‘정세균 체제’의 취약한 리더십과 차기 당권을 겨냥한 비주류의 공격, 당 밖에 머물고 있는 강력한 라이벌의 존재 등이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지난해 7월 취임한 정 대표는 지난 4월과 10월 재·보선을 잇따라 승리로 이끌며 입지를 다졌다. 지난달에는 “민주당과 정세균이 과감히 변하겠다”고 선언한 뒤 ‘생활정치’란 이름으로 민생투어에 나서 대권 행보에 들어갔다는 말까지 들었다. 그러나 그의 개인 지지율은 여전히 1%대를 넘지 못하고 있다. 또 당의 야권 통합 작업이 지지부진을 면치 못하고, 4대 강 예산정국에서 강경파와 온건파 양쪽으로부터 “뚜렷한 전략이 없다”는 비판에 직면하면서 그의 리더십은 흔들리고 있다.

당장 최고위원진 중 박주선 최고위원과 송영길 최고위원이 정 대표와 각을 세우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사후 호남의 맹주를 꿈꾸며 차기 당권을 노리는 박 최고위원은 지난여름부터 “친노 세력부터 우선 복당시키자”는 정 대표의 ‘순차복당론’에 맞서 “무소속 정동영 의원까지 포괄한 일괄복당론”을 주장했다. 당권 도전과 서울시장 출마 사이에서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진 송영길 위원도 지난달부터 “이제 정 의원을 복당시킬 때”라며 정 대표를 압박하는 대열에 가담했다. 지난주 정 대표는 의원총회에서 송 위원에게 “지난 4월 재·보선 당시 정동영 공천을 함께 반대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딴소리를 하느냐”며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고 한다.

당의 원내교섭을 책임지는 이 원내대표와 박 정책위의장의 갈등도 정 대표에겐 부담이다. 동교동에 뿌리를 둔 호남 출신으로 당내 지지 기반이 겹치는 두 사람은 지난 5월 원내대표 경선 당시부터 갈등 관계를 노출해 왔다. 지난 7월 정 대표가 박 정책위의장의 임명을 강행하자 이 원내대표 측은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고, 이후 두 사람은 회의나 당무 현장에서 신경전을 계속 전개해 왔다.

정동영 복당 처리 ‘발등의 불’

정 대표에게 더 큰 부담은 당 밖에 포진한 거물급 라이벌의 존재다. 춘천에서 칩거 중인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와 4월 전주 재·보선 당시 정 대표와 공천 갈등을 빚다가 탈당해 무소속으로 당선된 정동영 의원의 지지율은 5~7%에 달한다. 노무현 바람을 업고 내년 1월 국민참여당 창당을 준비 중인 유시민 전 장관의 지지율은 10%대에 이른다. 특히 민주당 내에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였던 한명숙 전 총리가 검찰수사의 칼날을 맞음에 따라 야권 인사 중 수도권 지지율 1위인 유 전 장관의 존재감은 더욱 커졌다.

정 대표는 올 9월 야권 통합을 위해 김원기 전 국회의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통합과 혁신 위원회’를 발족했으나 석 달째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정 대표의 통합 시나리오는 친노 세력을 우선순위로 하고 있다. 그러나 친노 세력은 서울시장 등 민주당이 가장 중시하는 승부처에 공천을 요구하고 있어 협상이 벽에 부닥친 상태. 비주류는 “정 대표가 정 의원 등 부담 가는 인물들의 복당은 기피한 채 친노들과 양보 불가능한 협상에 매달리고 있다”고 공격하고 있다. 연내 복당을 강력히 희망해 온 정 의원 측도 “새해 들어서도 정 대표가 결론을 내지 못하면 다른 수를 찾을 수도 있다”며 압박하고 있다. 심할 경우 전북을 중심으로 정 의원을 추종하는 무소속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난립해 민주당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지난주 “정 대표가 산자부 장관 시절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의 석탄공사 사장 지원을 도왔다”는 의혹이 불거진 것도 정 대표에게 적지 않은 상처를 입혔다. 검찰이 “정 대표는 수사 대상이 아니다”고 밝혀 한숨은 돌렸지만 그의 개인 이미지에는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란 우려가 당내에서 나온다. 하지만 공보국 관계자는 “정 대표가 뉴스의 중심에 서면서 그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징후가 있다”며 “의혹이 해명되면 위기를 기회로 뒤집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당의 한 상임고문은 “정 대표가 의석수 두 배인 거대 여당에 맞서는 핸디캡과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란 악재에도 불구하고 당을 끌어온 점은 평가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취약한 리더십 때문에 강경 노선으로만 흐른 결과 민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에 목매는 정당으로 전락했다. 국민의 여당 견제심리와 노 전 대통령 서거 효과로 지지율 20%대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7개월째 답보 상태인 현실을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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