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의 반란 ? 숨어 있던 가능성 춤추게 한 것 !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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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호 28면

전창진 부산 KT 감독이 작전지시를 하고 있다. 그는 적극적인 소통과 도전적인 목표 제시로 올 시즌 KT를 돌풍의 주역으로 올려 놓았다. [중앙포토]

남자 프로농구에서 부산 KT 소닉붐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지난 시즌 10개 구단 가운데 꼴찌였던 부산 KT는 25일 현재 21승8패로 울산 모비스와 공동 선두를 달리고 있다. 그중심에 ‘전창진 매직’이 자리 잡고 있다. 전창진(46) 감독이 지난 4월 새 사령탑을 맡으면서 KT는 올겨울 코트의 스타 팀이 됐다. 전 감독은 ‘리더십 교과서’로도 주목받는다. 적극적인 소통, 도전적인 목표 제시가 핵심이다.
 
COMPANION “팀원을 감동 시켜라”
24일 낮 12시쯤 부산 KT가 인천에서 숙소로 쓰고 있는 한 호텔. 전 감독은 “오전 훈련을 막 끝냈는데 같이 점심 식사나 하자”며 기자를 근처 식당으로 안내했다. 식당에 들어서자 그는 선수들 밥상부터 챙겼다. “된장찌개? 더 시켜, 시켜!”라며 직접 주문하기도 했다. “감독이라는 생각보다 선수들의 인생 선배, 동료(Companion)라는 마음가짐으로 일한다. 노래방도 같이 가고 고스톱·당구도 함께 즐긴다. 술을 전혀 못 하지만 술자리에 끝까지 남는 사람은 나다.”

부산 KT 돌풍 일으킨 전창진 리더십

그는 소통의 달인이다. 키 1m85㎝, 몸무게 100㎏이 넘는 그가 ‘겉은 곰, 속은 여우’로 불리는 이유다. 때론 어깨를 도닥거리고, 어떨 땐 거칠게 야단을 치고, 경기가 끝나고 나면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지난 6일 대구 오리온스에 한 점 차로 패한 다음 날 KT 숙소에서는 생뚱맞은 ‘폭탄주 파티’가 벌어졌다. 전 감독이 “다 잊자”며 회식을 준비했는데 이것이 폭탄주 돌리기로 발전(?)한 것. “때론 애인 문제도 상담해 주고 연봉 협상도 중재한다. 이러면서 하나둘 선수들 마음이 열렸고 이겨 보자는 승부욕도 생겼다.”

포워드 박상오는 이번 시즌 가장 성장한 선수로 꼽힌다. 그동안 슛 욕심 때문에 불필요한 동작이 길다는 지적을 받았는데 올해 들어 부쩍 팀플레이가 성숙했다. “‘농구는 득점이 전부가 아니다. 나는 그런 선수를 마음에 두지 않는다’고 전했다. 플레이가 달라지더라. 칭찬도 큰 소리로 한다. 알고 보면 KT 돌풍은 이변이 아니다. 숨어 있던 저력을 코트 위에서 발휘하게 한 것뿐이다.”

이장우브랜드컨설팅그룹의 이장우 대표는 “최고경영자와 말단사원이 같은 생각을 갖는 게 강한 조직의 특징이다. 이를 위해선 끊임없는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며 “전 감독의 공유 리더십에서 배울 게 많다”고 평가했다. 막상 전 감독은 “소통이라면 구단주인 이석채 KT 회장에게서 배우는 게 더 많다”고 멋쩍어한다. “(이 회장이) 경기가 끝나고 나면 반드시 문자메시지로 응원해 준다. 이겼을 때는 ‘다음을 준비하자’, 졌을 때는 ‘모든 게임을 다 이길 수는 없다’고 격려한다. 매출 10조원 회사 회장님도 하는 일인데, 나는 한 부서의 장(長) 아닌가. (웃으며) 더 분발해야 한다.”
 
BACK TO THE BASIC “기본에 충실하라”
전 감독이 시즌 처음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것은 지난 10월 20일이다. 라이벌 유재학 감독이 이끄는 모비스에 72-85로 대패하고 나서다. 그는 그러나 이날 경기에 대해 100점 만점에 90점을 줬다. 승부에선 졌지만 오히려 가능성이 확신으로 바뀌었단다. 톱니바퀴 같은 조직력이 살아나서다. 이후 KT는 8연승을 했다.

전 감독의 농구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끈질긴 수비 농구’다. KT가 지난 시즌과 가장 구별되는 점이기도 하다. 2001년 말 원주 삼보 감독대행에 취임하면서 그는 ‘다른 건 몰라도 수비 하나만은 잘 가르치는 감독이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가 이렇게 수비 농구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비가 잘돼야 공격이 자동적으로 풀린다. 수비가 기본이고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Back to the Basic). 또 공격은 개인 능력에 따라 좌우되지만 수비는 그렇지 않다. 수비는 기술보다 정신력 싸움이다.”

사실 지난 4월 선수들과 첫인사를 할 때만 해도 전 감독은 눈앞이 캄캄했다. 16명의 내국인 선수 가운데 9명이 부상 중이었기 때문이다. 자체 연습 경기도 못 할 처지였다. 그는 부상 선수들에게 10주간 재활 훈련 혹은 2군행을 통보했다. 팀의 간판 스타이자 전 감독의 대학 후배였던 양희승 선수는 결국 은퇴해야 했다. 시즌을 앞두고는 강원도 태백에서 체력 훈련을 했다. 강한 체력은 수비 농구의 ‘핵심 자원’이 됐다. 그는 “덕분에 근육 파열 같은 잔부상 걱정도 줄었다”고 덧붙였다. 동서대 이장희(경영학) 교수는 “수비 조직력을 강조하는 전창진식 농구는 기업의 리스크 관리, 연구개발 투자 등과 닮았다”며 “지속 가능 경영을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AIM HIGH “도전적 목표세워라”
올 시즌 전 감독의 1차 목표는 플레이오프 직행. 시즌 1·2위 팀에만 이 티켓이 주어진다. 그는 “2차 목표가 챔프전 우승”이라고 했다. 기자가 ‘굳이 계약 첫해에 우승을 목표로 할 이유가 있느냐’고 물었다. ‘4강→결승 진출→우승같이 계단식 목표를 정하는 게 현실적이지 않나’라는 얘기가 이어지는데 전 감독이 말을 잘랐다.

“누가 때를 기다려 주나. 우승은 할 수 있을 때 하는 것이다. 우승을 해야 ‘우승 전력’이 쌓인다. 이번 시즌 우승을 하면 그 실력을 계속 지키면 된다.”

프로야구 선수 양준혁(40)이 2007년 6월 2000안타를 달성하자 “다음 목표는 3000안타”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앞으로 6~7년은 현역으로 뛰어야 가능한 기록으로 현실적으로는 ‘버거운 목표’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거스 히딩크 감독이 “아직도 배가 고프다”며 포효하던 것과 뉘앙스가 비슷하다. ‘내일은 없다’는 승부욕이다.

전 감독도 더하면 더했지 그보다 못하지 않다. 농구 명문 용산고·고려대를 나온 그는 1985년 삼성전자(현 서울 삼성)에 입단해 신인상을 받은 유망주였다. 그러나 발목 부상이 선수 생활의 발목을 잡았다. 구단에서 재활을 권유했지만 그는 “일하지 않고 봉급받기 미안하다”며 매니저(주무)를 자청했다. 나중엔 구단 홍보·총무·스카우트 업무까지 맡았다. 이 기간 그는 ‘가장 부지런한 매니저’ ‘최고 홍보맨’으로 불렸다. 동부 감독 시절 최고 성적을 냈지만 승리 스트레스 때문에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 부산 KT로 옮길 때도 “이석채 회장이 도전의식을 자극한 것이 계기가 됐다”고 소개했다. 이장우 대표는 “잭 웰치 전 GE 회장이 ‘목표 수치를 최대한 높여 잡아라(Aim High)’고 강조한 것처럼 ‘도전적 목표(Stretch Goal)’를 세워야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한 승부욕이 있어야 잠재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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