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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이 없으면 제구실 못하는 젓가락이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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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호 20면

시민 108명에게 사람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질문 방식은 ‘사람은...다'에서 빈칸을 채워보자는 식이었다. 질문을 받은 대부분은 답을 못하고 머뭇거렸다. 다른 질문에서 수월하게 답을 했던 사람들도 여기서는 막혔다. 고심 끝에 그들이 생각해 낸 답 중 가장 많은 것은 “사람은 혼자 살수 없다”는 것(27명)이었다. 서울역 앞에서 만난 박예리(33·배우)씨는 “사람은 사람과 함께하는 존재”라고 했다. 때마침 눈이 내리자 휴대전화를 꺼내 어디론가 문자를 보내거나 통화를 하는 사람이 부쩍 느는 것을 보고 한 얘기다. 그들은 모두 눈이 내리기 전까진 홀로 제 갈 길을 가거나 뭔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사람은.... 다

이원일(25·회계사)씨는 사람을 ‘젓가락’에 비유했다. 짝이 맞아야 제구실을 하는 젓가락, 사람 역시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얘기였다. 주효주(25ㆍ대학생)씨는 “사람은 중독”이라며 “싫은 사람도 많고 미운 사람도 많지만 그래도 사람들과 계속해서 함께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회가 삭막해져 사람 사이의 관계가 예전만 못해 아쉽다는 사람도 있었다. 회사원 서현석(33)씨는 “사람은 따뜻하다”라면서 “사람들의 온기가 모여 사회가 따뜻해지는데 요즘엔 사람 사이의 따뜻함이 많이 식어 우리 사회가 삭막해진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알 수 없다’는 답변도 많았다(12명). 염우종(37·회사원)씨는 “사람은 과일”이라고 말했다. 겉만 보고는 과일의 맛을 알기 힘든 것처럼 사람도 속을 봐야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는 의미였다. 명동 지하상가에서 옷 가게를 운영하는 김병호(68)씨는 한참을 고민하다 “사람은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내 마음도 내가 잘 모르겠는데 사람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윤수정(25ㆍ영어강사)씨는 뉴스에 끔찍한 사건들이 나올 때마다 ‘도대체 사람이란 어떤 존재일까. 알 수 없다’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했다.

김용범(36ㆍ회사원)씨는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스스로 열을 발산하는 존재는 사람밖에 없다. 사람은 따뜻하고 아름답다”고 말했다. 김씨처럼 사람을 아름답고, 보석 같고,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로 생각하는 사람이 11명이었다. “국회의원들을 보면, 사람은 욕심이 많은 존재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고 하는 김영순(56ㆍ노점상)씨나 사람을 허수아비에 비유하며 누가 시켜야 하는 일이 많다고 생각하는 신상은(22·건물안내원)씨처럼 사람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었다.

이밖에 윤병협(29ㆍ만화가 지망생)씨는 “사람은 흔들바위다”라고 답했다. 세상의 유혹에 항상 흔들리는 존재가 사람인데 “바람에 넘어지느냐, 아니면 흔들바위처럼 조금은 흔들릴 수 있지만 꿋꿋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느냐가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광화문 광장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이주용(78)씨는 “사람은 에너자이저다”고 답하면서 “마음만 먹으면 나처럼 나이를 잊고 늘 박력 있게 살 수 있다”며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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