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조훈현 "난 해외 체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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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국내보다는 해외가 좋다."

후지쓰배 결승에 올라 중국의 창하오(常昊)9단과 한판 승부를 겨루게 된 조훈현 9단의 한마디다.

조훈현9단은 국내에서 몰릴 때면 어김없이 해외에서 돌파구를 찾아낸다. 이번에도 여성기사 루이나이웨이(芮乃偉)9단과 17세 소년 이세돌 3단에게 밀려 고전하다가 해외로 나가더니 힘차게 재기하고 있다.

1994년에 조9단은 이창호 9단에게 국내 타이틀을 다 잃어버리고 지방 기전인 '대왕' 타이틀 하나만 남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다.

'바둑황제가 아니라 허수아비 대왕' 이라는 얘기마저 들어야했다. 조9단은 그러나 이 해 후지쓰배.동양증권배 등 세계기전을 모두 석권하며 상금 획득에서 이창호를 더블스코어로 누르고 연말 MVP에 오른다. 극적인 반전이었다.

이같은 해외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조9단은 이창호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잃어버린 영토를 조금씩 회복해 갔다.

하지만 올해 조9단은 다시금 국내기전에서 참패를 맛보게 된다.

여성기사 루이나이웨이 9단에게 국수위를 빼앗겨 얼굴을 못들게 됐고 왕위전에서는 소년기사 이세돌3단에게 완패해 도전권을 놓쳤다.

그러자 조9단은 다시 해외로 나가 반전을 도모했다. 그는 지난번 아시아TV바둑 선수권전에서 우승컵을 따내더니 이번에는 후지쓰배 결승에 올랐다.

조9단은 1일 일본 오사카 시에서 벌어진 대회 준결승전에서 같은 한국기사인 목진석 5단을 불계로 꺾었다.

상대가 비교적 쉽지 않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목 5단으로서는 내심 이창호가 없는 무대에서 우승까지도 바라보던 참이어서 무척 아쉬운 패배였다.

준결승전 다른 한판에선 창하오 9단이 일본의 고바야시 사토루9단을 역시 불계로 꺾어 조9단과 창하오 9단은 8월 12일 도쿄에서 단판으로 우승을 다투게 됐다.

조 9단은 왜 국내 기전보다 세계 기전에서 더 강한 것일까. 첫번째 이유는 상금일 것이라고 한다.

프로 근성이 강한 조9단이 상금 많은 세계 기전에서 훨씬 더 집중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라는 것. 두번째 이유는 양궁의 경우에서도 나타나고 있지만 바둑은 국내 대회가 세계 대회보다 더 어려운 측면도 있다는 것. 특히 체력이 달릴수록 지구전인 국내 대회가 어렵다고 한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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