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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세상에 대한 호기심, 대국을 만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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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국가의 부와 빈곤
데이비드 랜즈 지음, 안진환, 최소영 옮김
한국경제신문, 919쪽, 3만7000원

왜 어떤 나라는 잘 사는데, 다른 나라는 가난할까.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인 지은이는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세계사를 경제적인 관점에서 다시 재단했다. 그는 서유럽과 미국을 부자로, 지중해 연안의 남유럽과 중동지역은 물론 중국까지 포함하는 그 밖의 모든 지역을 가난한 나라로 본다. 그러니까 지은이는 한 마디로 ‘현재’ 서구가 저렇게 잘 사는 이유를 설파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이다.

그는 번영의 가장 중요한 기반을 국가정책의 선택에서 찾았다. 그리고 그러한 선택의 기반이 문화라고 보았다. 그렇다면 어떠한 문화가 부를 창출하는 바탕이 될까. 지은이는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농민과 상공업자, 지식과 교육에 대한 사회적인 존중과 보급, 그리고 외부에 열린 사회를 핵심 요인으로 꼽았다.

지은이는 규제에서 자유로운 생산자의 사례를 16세기 영국에서 찾았다. 중세 이후 유럽에서 군주의 허가장을 내세워 자신들이 취급하는 상품에 대해 배타적인 힘을 행사했던 길드(도시 상인과 기술자 조합)가 유독 영국에선 맥을 추지 못했다. 왕권이 약했던 영국에선 지주인 지방영주들이 군주를 압박해 도시의 길드에 독점권을 주는 것을 막았던 것이다. 그 덕분에 영국에선 시골의 농민들이 남는 시간에 모직을 생산할 수 있었다. 그러니 임금이 비싼 직공들이 길드의 통제 아래 도시에서만 생산하던 다른 나라 제품보다 경쟁력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모직제품 수입국이던 영국은 16세기가 되면서 수출국으로 변모했다.

18세기 스칸디나비아는 교육과 지식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산업혁명 이전에만 해도 유럽에서 가장 가난했던 이 지역은 산업화를 늦게 시작했음에도 곧 무서운 속도로 따라잡았다. 문화적으로 완벽한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지은이의 주장이다. 개신교가 주도권을 잡았던 이 지역은 종교적 도그마가 없어 지식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그래서 선발 서유럽국가와 지적·과학적 분야에서 어깨를 나란히 했고, 문맹률이 낮았으며, 수재들에게 최상의 교육을 제공했다. 아울러 정치적인 안정과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 사유재산권이 보장되어 있었고, 농민들은 자유의 몸이었다. 가난한 바이킹 시절 유럽에서 가장 호전적이던 이들은 산업혁명으로 풍요를 구가한 뒤론 가장 평화로운 민족이 되었다.

반면 같은 유럽이라도 지중해 국가인 이탈리아와 스페인, 포르투갈은 사정이 달랐다. 이 지역은 종교적 편협성으로 인해 핍박·대학살·추방·개종 강요 등 혼란을 겪는 바람에 오랫동안 지식·교육과 절연됐다는 게 지은이의 주장이다. 그 결과 1900년 문맹률은 영국이 3%인데 비해 이탈리아 48%, 스페인 56%, 포르투갈 78%였다. 그 탓에 이 지역은 오랫동안 번영과 담을 쌓았다. 이탈리아 남부에선 ‘인적 자원’밖에는 수출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 지역 출신 이민자가 미국과 남미에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지은이는 이슬람 세계에 대해선 “종교와 속세를 구분하지 못하고, 지식과 배움이 종교에 적대적이라고 생각해 이를 등한히 했다”라고 평가했다. 일찍이 과학이 발달했음에도 종교 때문에 ‘사색과 실천이 서로 단절되어’ 기술 발전으로 연결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중국에 대해선 유럽보다 더 나은 자연적인 조건을 갖춘 데다. 화약·나침반·인쇄술이라는 대단한 발명을 했다는 것을 높게 평가했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 이러한 자부심, 또는 우월감이 외부에 대한 무관심으로 연결돼 나라의 문을 닫는 바람에 발전의 원동력을 잃었다고 봤다.

이렇듯 지은이는 이러한 우월감을 경계한다. 프랑스도 훌륭한 나라를 만들었지만, 그런 자부심 때문에 고실업의 늙은 복지국가로 뒤처지고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지금 번영을 구가하는 ‘제국’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책의 제목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에서 따왔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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