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람] 폐교된 국민학교 동창모임 만든 정광섭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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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지난 2월 17일 오후 대한상공회의소 건물 내 한식당. 50대 중반을 갓넘은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야, 짱구!"

"어, 똘똘이!"

주름진 얼굴에서 초등학교 시절의 앳띤 모습을 찾아낸 이들은 금새 함박 웃음을 터뜨렸다.

지난 1979년 폐교된 '남대문국민학교' 의 14회 동창생들은 졸업후 41년만에 이렇게 다시 뭉쳤다.

현재 상공회의소 건물 자리에 있던 남대문국민학교는 70년대말 정부의 도시개발 정책에 밀려 문을 닫았다.

이후 영원히 잊혀질 뻔한 남대문초등학교라는 이름과 동창들을 세상 밖으로 끌어낸 데는 현재 소프트웨어 보안장치 판매사의 대표를 맡고 있는 정광섭(鄭光燮.55)씨의 노력이 컸다.

지난해말 鄭씨는 친구 몇명과 조그만 술자리를 가졌고 거기서 "동창들을 한번 찾아보자" 며 의기투합하게 된 것.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남대문국민학교 관련자료들이 남산초등학교로 이관된 사실을 알아낸 鄭씨는 즉시 달려가 졸업앨범과 학적부를 일일이 대조하며 동창명부를 작성했다.

한달만에 1백30여명의 연락처를 찾아낸 鄭씨는 이후 인터넷을 활용해 적극적으로 '동문찾기' 에 나섰다.

"특이한 동문의 이름은 전화번호 서비스를 통해 알아냈고 기사검색을 통해 사회 저명인사도 몇몇 찾아냈죠. "

한국여성단체연합 지은희(池銀姬)대표도 동창생이다. 인터넷 인물검색으로 池씨를 찾아냈다는 鄭씨는 "한눈에 알아보겠더군요. 초등학교 때 이미 유명했었거든요" 라고 회고했다.

주치의와 환자의 관계로 20년을 지내다가 동창회에서 뒤늦게 동문인지 알게 된 경우도 있었다.

지난 6개월간 사업보다 동창들 찾는 데 열중한 鄭씨 덕분에 연락이 가능해진 동창들이 3백여명을 넘어섰다.

요즘엔 홈페이지(http://www.ndm.or.kr)까지 개설해 친목을 꾀하고 있다.

이곳 게시판에는 "우리 엄마가 동창회 나간 이후로 생기를 되찾았다" 는 딸의 편지부터 "난생 처음 PC방 가서 메일 날립니다" 는 여동창의 인사까지 다양한 글이 실려 있다.

"40년 세월의 벽을 뛰어넘어 '피처럼 진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 사람만 만나도 만족했을텐데 이렇게 수백명을 만날 수 있다니 꿈만 같습니다."

나머지 5백여명 동창생들의 연락을 손꼽아 기다리는 鄭씨는 어느새 열세살 '짱구' 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연락처 02-736-4406.

글.사진〓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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