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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한가위 극장가] "중년들 극장가로 모이게 우리 멜로 한번 찍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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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61). 그의 코믹 연기가 개그의 소재가 되곤 하지만 선 굵은 아버지 연기도 일품이다. 100만명 이상이 본 영화 '가족'에서 그는 딸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그러면서도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아버지로 등장해 관객을 울린다. 김수미(55). 배운 거, 가진 거 없지만 자식은 끔찍이도 사랑하는 '일용 엄니'를 20여년 연기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에서도 야구의 '야'자도 모르지만 아들 몰래 땡볕의 관중석을 끝까지 지키는 엄마로 가슴 찡한 연기를 펼친다.

어느덧 최고참급 연기자가 된 두 배우가 지난 17일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에서 만났다. 더러 마주친 적은 있지만 한참 동안 대화를 한 것은 MBC 일일 연속극 '자반 고등어'에 함께 출연한 지 7년 만이라고 한다. 이들은 영화와 드라마에 대해, 그리고 가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오랜만이네. 예뻐졌어."(주현)

"많이 늙었죠 뭐. 이렇게 보니까 '자반 고등어' 찍을 때 얼굴만 봐도 웃음이 터져 눈을 안 마주치면서 연기했던 기억이 나네요."(김수미)

"아, 그때 참 좋았는데. 왜 그때 촬영 때마다 먹을 거 잔뜩 만들어 와서 같이 먹고 했잖아. 음식 솜씨 진짜 좋던데. 참, 영화 찍었데. 김사용인가 뭔가. 근데 김사용이 실제 인물이라며?"(주)

"김사용이 아니고, 감사용이에요. 거기서 건어물 장사하는 엄마로 나와요."(김)

"건어물 장수야? 나는 생선 장순데."(주)

"맞아, 영화 '가족'에서 생선 장사하는 아버지로 나오죠? 꼭 보려고 마음먹고 있어요."(김)

"연극영화과 나온 딸의 친구인 감독이 하자고 해서 했지 뭐. 난생 처음 삭발도 하고 고생 많이 했어. 삭발은 안 하려고 했는데 감독이 딸 친구니까 더 말을 못하겠더라고."(주)

"나도 아들 때문에 '감사용' 하게 됐어요. 영화사에서 아들이 아이스하키 선수였으니까 운동 선수를 아들로 둔 어머니의 심정을 잘 표현할 것 같다며 제의를 하더라고요."(김)

"난 한쪽 눈이 안 보이는 걸로 나오는데, 그러니까 표정 연기하기가 정말 힘들더라. 감독이 감정을 되도록 드러내지 말아달라고 주문해서 그것도 힘들었고."(주)

"나도 그랬어요. 내가 원래 수다떨면서 감정을 내뱉는 게 특긴데 그런 거 하지 말라더라고요. 나중에 영화를 보니까 그렇게 감정을 내면에 감춰두는 연기를 한 게 잘했다 싶었어요."(김)

"하긴 부모 맘이 다 그런 거지. 겉으로는 화난 척, 무심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늘 자식 걱정하는 거 아니겠어. 애들이 어떻게 되더라?"(주)

"아들 하나, 딸 하나. 아들은 사업하고 딸은 외국계 회사에 다니죠. 아들은 전에 드라마 '아이싱'찍을 때 연기도 좀 하고 했는데, 집안에 연예인 둘씩 필요하냐며 그만뒀어요."(김)

"나도 딸 하나, 아들 하난데, 딸은 연기 공부도 좀 했어. 내가 소질 없어 보이니까 그만 하라고 했지. 아들은 항공사 직원이고."(주)

"영화가 떠서 인터뷰에 뭐에 바쁘셨겠네요."(김)

"그렇지 뭐. 그런데 '가족'에 관객이 제법 드는 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 사람들이 아직도 이런 감성적인 영화를 좋아하는구나 하고."(주)

"요즘 영화에는 가슴에 남는 얘기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감사용'이나 '가족' 같은 영화는 좀 다르지요."(김)

"최근에 나온 영화를 보면 맨 예쁘게 생긴 젊은이들만 나와서 요란법석을 떨고 아예 어른은 없어. 드라마도 마찬가지야. 말로는 실버시대 실버시대 하면서 아버지 세대에 대한 고민은 온 데 간 데 없잖아. 배우들도 그래. 하나같이 선남선녀야. 평범한 얼굴 속에 다양한 느낌이 표현되는 건데. 외국은 그렇지가 않은데 우리만 유독 심한 것 같아."(주)

"맞아요. 50대 멜로, 이런 것도 영화로 괜찮을 텐데."(김)

"안 그래도 '가족'에 나온 뒤로 영화 출연 제의가 좀 있는데 그 중에 '중년의 멜로'도 있어 해볼까 하고 생각 중이지. 우리 둘이 멜로 한번 찍어도 좋잖아."(주)

"좋지요. 나랑 하고 싶다고 영화사에 얘기해 봐요(웃음)."(김)

"알았어(웃음). 그리고 나이든 사람들도 극장도 좀 가고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요즘 영화 무대 인사한다고 극장 가보면 젊은 사람들밖에 없어. 오륙십대는 다들 어디 갔는지…."(주)

"요즘 청계산에 자주 오르는데 거기 가니까 많던데요."(김)

"그래, 우리가 멜로 한번 찍어서 어른들을 극장으로 모으자구."(주)

"이번 추석에는 젊은이들이 부모님 모시고 극장 가는 모습을 많이 봤으면 좋겠네요."(김)

글=이상언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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