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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현실체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날씬한 몸매에 대한 강박증 때문에 신경성 식욕부진증이나 신경성 대식증(大食症)을 앓는 환자들이 많다고 한다.

신경성 식욕부진증 환자들은 체중 증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식사를 아예 포기하거나 먹더라도 구토나 약물복용을 통해 먹은 음식을 뱉어내려는 경향을 보인다.

환자의 95%가 여성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경성 식욕부진증은 폭식(暴食)과 제거행동을 반복하는 신경성 대식증을 동반하기도 한다.

대식증 환자들은 양에 대한 조절능력을 상실해 일단 먹었다 하면 정상인보다 훨씬 많은 양을 먹게 되고 식사행위는 구토나 설사제.이뇨제 복용 등 부적절한 보상행위로 이어지게 된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다이어트 이후 흔히 발생하는데 미국 정신과학회는 이런 증세가 적어도 3개월간 주 2회 이상 반복되면 대식증으로 진단한다.

멀쩡한 여성들까지 신경성 식욕부진증이나 대식증을 앓게 되는 데는 대중매체의 책임이 크다.

패션잡지나 텔레비전 광고에 등장하는 모델들은 하나같이 '말라깽이' 들이다.

정상적인 여성의 체내 지방비중은 22~26%인데 비해 1990년대 모델들의 평균 체지방은 10~15%에 불과하다는 것이 영국의학협회(BMA)의 보고다.

37-23-36의 환상적 몸매를 지녔던 마릴린 먼로도 요즘 기준으로는 슈퍼모델이 되기 어렵다.

BMA 보고서는 "모델들이 보여주는 몸매의 가늘기는 현실적으로 도달하기 어려운 수준일 뿐만 아니라 생물학적으로도 부적절하기 때문에 일반 여성들에게 절대로 이상적인 체형이 될 수 없다" 고 경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션업계와 광고업계는 비쩍 마른 모델을 선호함으로써 여성들의 섭식장애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의사들의 경고를 받아들여 영국의 패션매체들이 모델의 최저체중을 제한하고 '현실 체형' 을 가진 모델들도 기용하는 방향으로 자율규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소식이다.

미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다르다. 19세기까지만 해도 풍만한 몸매가 여성미의 상징이었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몸매는 결코 날씬하다고 할 수 없고 밀로의 비너스도 요새 기준으로 보면 비만형이다.

르누아르의 그림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한결같이 엉덩이와 가슴이 풍만한 육체파들이다.

모니카 르윈스키와 케이트 윈슬렛(영화 '타이타닉' 의 여주인공) 이후 다시 육체파가 뜨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몸매에 대한 신화는 의.약업계가 다이어트 상품과 서비스를 팔기 위해 만들어낸 교묘한 상술인지 모른다.

21세기는 외모나 몸매보다 옷과 액세서리의 재치있는 코디네이션을 통해 연출하는 개성미가 더 돋보이는 시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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