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휴사 방북 취재기자 방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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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6월13일부터 15일까지 평양은 민족사의 큰 흐름을 바꾸는 역사의 현장이었다.남과 북의 두 정상이 손을 맞잡았다.15일 서울로 돌아오는 날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평양 순안공항에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포옹을 나눴다.

그 뜨거웠던 현장을 지켜봤던 기자들에게 뒷 얘기를 들어본다.방담에는 본사와 기사제휴협정을 맺고 있는 광주일보 김여송 부국장·부산일보 김대진 차장과 본사 김진국 차장이 참석했다.[편집자 주]

[참석자]

-김여송 광주일보 부국장

-김대진 부산일보 차장

-김진국 중앙일보 차장

▶김여송〓6월 14일은 우리 민족의 역사에 길이 남을 대축제일이 될 것 같습니다. 공동취재단의 일원으로 13일 서해안을 거쳐 북한 영공에 들어설 무렵엔 긴장감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같은 생각은 金위원장이 평양공항으로 직접 金대통령을 영접나온 순간부터 바뀌었습니다.

▶김대진〓특히 이번 회담에서 '남북공동선언' 이 나와 취재기자로서도 보람이 컸습니다.

▶김진국〓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저는 1992년 제6차 고위급회담 때 평양에 갔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긴장과 대결의 현장에 서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첫 인상부터 달랐습니다. 평양시내를 가득 메운 환영인파, 노인들의 눈에 글썽이는 눈물, 그런 것이 '뭔가 되겠구나' 하는 예감을 갖게 했습니다.

▶김여송〓공항에서 평양시내로 들어갈 때 연도에 겹겹이 줄지어 선 수십만 시민들이 꽃술을 힘차게 흔들면서 목이 터져라 '만세, 만세' 를 외칠 때는 저도 콧등이 찡해왔습니다.

▶김대진〓두 정상이 만나 악수하는 사진이 노동신문 1면에 크게 실린 14일부터는 거리를 지나던 주민들이 우리 대표단이나 기자들을 알아보고 손을 흔들어 줬습니다.

▶김여송〓노동신문이 남쪽 대표단 얘기를 그렇게 크게 보도한 것은 처음이랍니다.

▶김진국〓고위급회담 때는 보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14일 밤 늦게 공동선언에 서명한 사실이 15일 아침 노동신문 1면에 크게 보도된 것을 보면 북한 당국이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알 수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도 金대통령의 전력에 대해 평가했습니다. 한 안내원은 "여러번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 아니냐. 그런 점에서 호감이 간다" 고 했어요.

▶김대진〓이번 회담에서는 金위원장의 일거수 일투족이 주목거리였습니다. 그가 金대통령을 마중나온 순간부터 화제를 몰고 다녔습니다.

▶김여송〓그동안 폐쇄적이고 부정적이었던 金위원장의 이미지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지금 당장 통일대통령을 투표로 뽑는다면 金위원장이 당선될 것이란 농담까지 나올 정도였죠.

▶김대진〓우리측 공식수행원들도 그를 한결같이 호의적으로 평가했습니다. 이헌재(李憲宰)재경부장관은 "소탈하다" 고 했고, 한광옥(韓光玉)비서실장은 "화통하더라" 고 했습니다.

▶김진국〓첫날 회담에서 金대통령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金위원장의 원맨쇼같았죠. 순발력있게 농담을 잘 하고, 무례하다고 할 정도로 대화가 자유로웠습니다.

▶김여송〓金위원장은 무례하게 보일 정도로 자유분방했습니다. 그러나 金대통령이 머문 백화원 영빈관을 직접 찾는 등 예의있는 태도도 보였습니다. 그의 말처럼 '동방예의지국' 으로서 손님을 맞는 예를 보여주려 했는지도 모릅니다.

▶김대진〓金위원장은 김일성(金日成)주석이 사망한 이후 처음으로 대중 앞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북한측 안내원들도 우리 기자들이 金위원장을 본 얘기를 하면 넋을 잃고 들었습니다.

▶김진국〓 '김정일〓김일성' 이라는 교육이 철저히 이뤄져 金위원장이 북한사회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북한내 강경파라는 군부 지도자들도 과거와 달리 평복을 입고 나와 金대통령의 술을 받아 '원샷' 했습니다. 그런 대목이 앞으로 전망을 밝게 해줍니다.

김용순(金容淳)대남담당 비서도 "장군님이 수표(서명)했으니 우리는 따른다" 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를 안내한 사람도 꼭같은 말을 했습니다. 북한 체제상 영도자인 金위원장의 서명은 최고법이나 마찬가지지요.

▶김여송〓이번 회담은 김일성 주석 사망후 김정일 위원장이 본인의 시대를 여는 데 필요한 물적 토대와 국제사회의 지지기반을 얻기 위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김진국〓金위원장은 당장 대남 비난방송을 중단하라고 지시할 정도로 적극적이었습니다. 그만큼 북한 내부사정이 어려운 듯 합니다. 북에서 만난 사람들도 전력.식량 등이 부족해 심각한 상태라고 인정했습니다.

▶김대진〓그러나 아직 미사일.핵 등을 외교적 수단으로 이용하려 하기 때문에 언제 변수가 생길지 모른다는 걱정이 됩니다.

▶김여송〓국내에서 너무 성급한 기대를 해도 역풍이 불 수 있겠죠.

정리〓김진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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