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연초를 잘 보내는 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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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호 35면

장면 1 : “경기 안 좋은 거 맞아? 강남의 괜찮은 음식점 룸은 연말까지 예약이 이미 끝났대!”

장면 2 : “우리 한번 봐야지. 근데 ○○씨. 미안한데 연말은 너무 바쁘니까 우리 신년회로 합시다.”

장면 3 : “당신은 어찌 매일 술이에요? 속도 안 좋다면서.” “당신도 사회 생활해봐. 연말엔 어쩔 수가 없는 거야.”

비즈니스 세계에, 연말 만남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전쟁에는 무기가 필요합니다. 어떤 이는 좌중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남몰래 새로운 유머를 익히고, 어떤 이는 신곡을 18번으로 연마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헤어짐의 순간을 뜻 깊게 하기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연말 만남 전쟁을 잘 치르기만 하면 연말 연초를 잘 보내는 것일까요? 혹시 무의식적으로, 조용히 자신을 대면하는 것이 두려워, 빼곡한 만남스케줄 속에 자신을 묻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다른 사람 속에 있는 자신과 참 자신 중에 어느 것과 더 친한가?(名與身孰親)’ 노자(老子)의 질문입니다. 물론 자신을 둘러싼 사회의 한 부품으로서의 ‘나’도 중요합니다. 그 속에 명예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연말 전쟁을 잘 활용하면 자신과 맞물려 있는 기어에 기름도 치면서, 사회 속의 자신을 점검할 수 있는 계기가 되겠지요. 그런데 참 자신은? 연말 전쟁 속에서 오히려 망가져 가고 있다면?

사격에 영점조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1년을 살다 보면 연초에 맞춰 놓은 영점이 잘못되어 있기 십상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연말 연초에 점검해야 하는 영점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먼저 나침반입니다. 자신의 나침반이 자신의 중장기 삶의 목표를 잘 가리키고 있는지 나침반의 영점을 점검해야 합니다. 자신의 목표가 ‘어떤 자리’였다면 그곳으로 얼마나 다가갔는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인생 2막 준비’였다면 생각만큼 잘 되고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두 번째는 습관입니다. 예를 들어 연초에 ‘아침 운동을 하겠다’고 결심했었다면 과연 그 습관이 잘 정착되었는지 그 습관의 영점을 점검해야 합니다. 인생의 동반자에게 ‘하루에 한 번씩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자’라고 했었다면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자동항법장치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일에 대해 모든 정보를 다 분석한 후에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엔 세상은 너무 복잡하고 머리와 시간은 너무 작습니다. 그래서 삶의 효율성을 위해 사람들이 각자 자신에게 맞게 고안해서 쓰는 것이 자동항법장치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일을 누구에게 맡길 때는 1) 그가 그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인가? 2) 그가 최선을 다할 마음가짐이고 또 그럴 여건인가? 라는 두 가지 가이드라인만으로 결정한다’. 하나의 자동항법장치입니다.

‘아는 분의 경사(慶事)에는 바쁘면 안 가지만 조사(弔事)에는 반드시 간다’. 하나의 자동항법장치입니다. ‘아이들 교육은 배우자에게 맡기고 아이들에게 중요한 문제가 있을 때만 신경을 쓴다’. 하나의 자동항법장치입니다. ‘몸이 이상하면 A에게 조언을 구하고, 법률 문제가 생기면 B에게 조언을 구하고, 책을 읽고 싶을 땐 C에게 조언을 구한다’. 하나의 항법장치입니다. 이 항법장치들도 정기점검이 필요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상황도 바뀌기 때문입니다.

“야, 이 사람아. 진작 좀 얘기해주지. 내 수첩 스케줄을 봐. 이미 빼도 박도 못하게 술기운에 새해를 맞게 되어 있잖아.” 이렇게 이야기하시는 분이 있다면 너무 걱정하시지 하십시오. 우리에게는 또 한 번의 1월 1일이 있습니다. 음력입니다. 모두 의미 있는 연말 연초 보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 글을 아껴주시는 독자 여러분에게 이 글로 새해 인사 올립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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