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 북한TV, 김정일 방중 보도 초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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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북한TV는 평양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이다.

남북 정상회담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북한TV가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는지 위성TV(방송시간 오후 5~11시쯤)를 모니터했다.

○…눈을 씻고 봐도 북한TV에 남북 정상회담 관련 보도는 없었다.

회담을 사흘 앞둔 10일 조선중앙TV 뉴스는 김정일 총비서의 베이징 방문(5월 29~31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북한은 오후 8시 '보도' 시간을 통해 총 15건의 뉴스와 단신을 방송했다.

톱 뉴스에 해당하는 첫 3개는 네팔.인도.기니 등 제3세계 언론들이 金총비서의 베이징 방문에 관해 보도한 내용을 소개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아직은 베이징 방문에 대한 홍보효과를 극대화하는 기간인 셈이다.

여타 뉴스도 ▶ '백두산 3대장군' (김일성.김정일.김정숙)의 1946년 해주 방문▶평북 토지정리▶평양 어린이 콩우유공장▶3대 혁명 붉은 기 운동 등을 현장스케치를 곁들여 다루고 있다. 평상시 보도와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평양의 이런 태도는 정상회담에 대한 북한 주민의 기대치를 크게 높이지 않기 위해 잠시 호흡을 고르는 것으로 이해된다.

○…특이사항은 북한이 지난 97년 8월 월북한 천도교 전 교령 오익제(71)를 체제 홍보에 전면적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 현재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돼 있는 오익제는 9일과 10일 방송에서 자강도 방문 시리즈물에 출연, 그 일대의 역사유적지와 생산현장.교육시설 등을 둘러보았다.

그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장군님의 품안에 북조선 노동자들이 행복하게 잘 산다" 는 등의 체제 찬양 발언을 반복했다.

오익제의 연속적인 TV출연은 정상회담을 앞두고 주민들 사이에 발생할지도 모르는 '남풍(南風)' 에 대비해 '예방주사' 를 맞히는 격이라 할 수 있다.

○…지난 7일부터 북한TV는 '보도' 직후인 오후 8시30분부터 1시간짜리 TV연속소설 '휘날리는 댕기' 를 방영하고 있다.

국제경기를 앞둔 리듬체조 선수들의 애환을 다루면서 일 때문에 결혼이 늦은 여성지도원과 과학자간의 러브스토리를 다룬 드라마다.

스포츠계를 비롯해 해외진출의 강한 열망을 뿜어내는 한편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묵묵히 일해온 노총각을 사회의 진정한 모범생으로 그리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리듬체조 훈련장의 발랄한 모습이 북녘 청년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TV는 11일 정오부터 해방공간에서 좌우합작을 시도한 정치지도자 몽양(夢陽)여운형(呂運亨)선생을 다룬 극영화 '햇빛이 그리워' 를 방영했는데 위성TV로 중계하지는 않았다.

김대중 대통령의 방문을 앞두고 남측 지도자(여운형)가 해방 후 평양을 찾은 영화를 TV에서 재방영한 의도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최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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