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컵 실업축구] 한국철도 첫 패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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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후반 40분 권대준이 상대 골키퍼를 제치고 골을 넣었다. 남은 5분이 5시간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드디어 종료 휘슬, 선수들은 엉엉 울면서 벤치로 뛰어들어 이현창(52) 감독을 얼싸안고 그라운드에 쓰러졌다.

"우리는 해냈다. " 한국철도가 창단 후 처음으로 전국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일제시대인 1943년 '조선철도국' 이란 이름 아래 우리나라 최초 실업축구팀으로 태어난 지 무려 57년 만이었다. 해방을 맞아 철도청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96년 한국철도로 거듭 태어났지만 철저히 무명이었다.

한국철도는 지난 10일 천안 오룡경기장에서 벌어진 현대자동차컵 실업축구리그에서 할렐루야를 1-0으로 누르고 7승3무, 무패의 전적으로 우승했다.

준프로팀 상무, 강호 미포조선.국민은행 등 10개팀들과 모두 한 차례씩 맞붙은 끝에 얻은 진정한 승리였다.

선수단 중 정식직원 3명을 제외한 20명이 월급 1백만원도 못받는 일용직. 지난해 어렵사리 마련한 경기도 안양의 연립주택 숙소는 장마철엔 비가 새고 한여름에 냉방도 들어오지 않는다.

전용 연습장은 언감생심, 이곳저곳 눈치를 보며 훈련을 해야만 했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선수들을 하나로 묶은 힘은 고생을 함께 나누는 가족적인 팀 분위기. 95년 지휘봉을 잡은 이현창 감독은 패배의식에 젖은 선수들을 다독이며 희망을 불어넣기 위해 애썼다.

사비를 털어 회식을 시켜주고 자신이 직접 장을 봐 별식을 만들어 먹이기도 했다. 지난해 가을철실업축구연맹전 결승에서 호화군단 상무와 연장 접전 끝에 승부차기에서 석패, 우승을 놓쳤지만 선수들은 "우리도 할 수 있다" 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이감독은 "우리도 영양사와 조리사가 있어 선수들의 영양관리를 체계적으로 한다면 더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을 것" 이라고 소박한 희망을 밝혔다.

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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