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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석 칼럼] 카메라·현대사진 이야기 <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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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야구·농구·미식축구는 공 크기나 생김새가 제 각각이다. 때문에 축구공으로 테니스 하거나 야구공으로 농구할 수는 없지만, 사진은 카메라 한 대로 모든 걸 해결한다. 다큐멘터리용 카메라가 따로 있고, 예술사진용이 별도로 있지 않다. 카메라는 단지 도구일 뿐이다. 이 평범한 사실을 받아들일 때 입장하는 멋진 신세계가 현대사진이다. 영상·이미지의 이 원더랜드에서는 피사체를 단순 재현하는 재래식 ‘찍는(take)사진’과 달리 원하는 영상을 위해서 인위적 연출도 무제한 허용한다.

때문에 현대사진에는 ‘만드는(make) 사진’이 안겨주는 새로운 즐거움이 있다. ‘결정적 순간’을 말했던 카르티에 브레송 식의, 다소 지루한 근대사진은 잠시 잊자. 현대작가 칸디다 회퍼·토마스 스트루스도 여전히 찍는 사진을 하지만, 만드는 사진이 새로운 주류다.

그걸 받아들여야 스타작가 토마스 루프의 “사진은 리얼리티 자체가 아니다”라는 말도 이해된다. 요즘 나는 현대 여성작가 난다(40)의 작업에 필이 꽂혔다. 사진전문 월간 ‘포토넷’ 12월호 별책부록 포트폴리오에서 확 눈에 띄었던 그는 새롭다. 물론 새로움으로 무장한, 한국사진의 앞날을 걸머진 작가는 꽤 된다.

유치원생 그림을 바탕으로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드는 정연두를 비롯해 김상길·윤정미·노순택·김옥선·천경우·백승우·이윤진·구성수가 기대주에 속하고, 안세권·이선민·신은경·김윤호·파야·방병상·유현미·변순철·권순관·이혁준·김인선·임수식·박승훈도 지켜볼 만하다. 모두 40대 내외다. 하지만 난다에게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경쾌한 놀이로서의 사진이다. 그 틀에서 일제강점을 거친 파행적 근대화 100년도 녹여내는데, ‘모던 걸, 경성 순례기’ 시리즈가 그렇다. 그 중 한 작품은 일제 종로통의 영화관 ‘우미관’이 먼 배경이다.

영화간판 ‘월하의 공동묘지’ 밑에 관객이 우글대는데, 한복차림에 짙은 선글라스를 낀 채 팝콘을 즐기는 기묘한 스타일의 여성 셋이 클로즈업됐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은 묘하게 유쾌하다. 영화 세트장 같은 인공도시로 재현해낸 제3의 이미지라서 더욱 그렇다. 작가는 “착각 마세요. 픽션이걸랑요”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히트는 따로 있다. 자세히 보면 관람객은 모두 한 사람이다. 난다 자신을 여러 모습으로 찍은 뒤 그걸 화면에 정교하게 재배치한 것이다. ‘사실 같은 허구’의 세계인 현대사진 어법에 충실한, 난다 식의 영상 게임이다.

한마디로 그는 ‘잘 노는 작가’다. 제대로 놀려면 자기만의 시각과 철학이 관건이다. 철학자·사회학자 이상의 지적 능력은 물론 그에 더해 필요한 게 또 있다. “이게 내 방식입니다.”라고 말할 줄 아는 당당함, 뻔뻔함이야말로 결정적 자산이다. 난다 역시 그렇다. 알고 보니 그는 지난해 첫 개인전을 가진 ‘초짜’다. 그게 대순가? 그를 포함한 젊은 작가를 재목으로 키워줄 이는 결국 눈 밝은 애호가 층이다. 유명작가라면 껌뻑 하면서 막상 젊은 작가에는 턱없이 엄격한데 꼭 그 반대로 해야만 저들이 큰다. 한국 사진을 이끌 미래의 블루칩 작가, 그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조우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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