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현안 풀기] 3. 기본합의서 이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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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기본합의서 이행을 모든 대북 접촉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합니다.”수십년간 남북관계를 다뤄온 이상우(李相禹)서강대 교수의 당부다.

1992년 2월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한이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해 합의한 역사적인 문건이다.전문가들은 이대로만 실행되면 남북한 사이에 공존 번영의 토대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중앙일보가 위촉한 정상회담 보도 자문·기획위원들이 기본합의서 이행을 둘러싼 문제들을 짚어봤다.

◇ 왜 이행되지 않았나〓전문가들은 북한이 기본합의서 이행을 주저하는 이유는 체제불안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서주석(徐柱錫)한국국방연구원 북한군사연구팀장은 "합의서는 모든 분야에서 비정상적인 남북관계를 청산하는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은 이를 실천에 옮길 경우 나타날 수 있는 체제불안을 염려하는 것 같다" 고 말했다.

합의서는 정치.경제협력.사회문화.군사 등 4개 공동위원회를 구성해 분야별로 현안들을 풀어 나가도록 명시하고 있다.

徐팀장은 "합의서가 모든 현안을 다루도록 규정한 것이 북한에 부담을 준 게 틀림없다" 고 덧붙였다.

북한이 처음부터 합의서 이행을 생각지 않았다는 견해도 있다. 윤대규(尹大奎)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부소장은 "합의 당시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하고 한.소 수교가 이뤄지는 등 기존 동맹관계가 무너지자 북한이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합의서에 서명했지만 실천할 의사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고 지적했다.

◇ 이행시 효과〓기본합의서가 이행되면 남북한간에 평화공존이 이뤄질 것이란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尹부소장은 "합의서는 적대적 분단상황에서 통일로 가는 길을 제시하는 안내서" 라며 "실행에 옮길 경우 현재의 정전체제가 평화체제로 전환돼 군비통제 및 축소가 실현되고 호혜적 경제관계가 구축되며 남북한 주민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상대방 지역을 방문할 수 있게 된다" 고 예상한다.

이산가족 문제 해결도 성큼 앞당길 수 있다는 뜻이다. 그는 또 "이런 상황이야말로 '사실상의 통일상태' 나 마찬가지" 라고 덧붙였다.

이상우 교수도 "합의서 내용대로만 실행하면 남북한의 평화공존을 정착할 수 있다" 고 예상했다. 관건은 북한이 합의서를 이행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는가 하는 점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 대응 변화 감지된다〓최근 기본합의서에 대한 북한의 태도에 미묘한 변화의 조짐이 엿보인다.

배종렬(裵鍾烈)수출입은행 선임연구원은 "지난해 북한이 외국인투자관계법을 개정하면서 남한을 제외한 것은 민족 내부거래 원칙을 적용하려는 징표로 기본합의서 이행 의사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 이라고 분석했다.

동용승(董龍昇)삼성경제연구소 북한연구팀장도 "최근 경협을 할 때 체결하는 합의서에 '남북 기본합의서에 입각하여' 라는 문구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고 소개했다.

남북관계의 상황 변화에 따라 북한이 합의서 이행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합의서 본격 이행을 서두르지 말고 현재의 대북정책을 지속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허문영(許文寧)통일연구원 통일정책실장은 "공세적인 대북정책보다 정경분리 원칙 아래 경제교류를 확대하고 인도주의적 지원을 계속해 가는 것이 지름길" 이라고 말했다.

그밖에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새로운 합의서를 만들어 기본합의서를 대체하려고 하지 않도록 잘 대응해야 한다" 는 서진영(徐鎭英)고려대 교수의 지적도 귀기울일 만하다.

이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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