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종수의 시시각각

친서민 vs 일자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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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MB정부가 일자리 만들기를 내년에 추진할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은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경제 살리기 공약으로 당선된 이 대통령으로서는 일자리를 늘린 실적으로 경제회생의 성과를 국민에게 빨리 보여주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내년에 경제가 5% 안팎의 성장을 기록할 것이라는 낭보에도 불구하고 일자리가 당장 늘어나기 어렵다는 게 고민이다. 일자리는 기업의 투자와 창업이 선행된 후에 시차를 두고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성장률이 아무리 올라도 일자리가 눈에 띄게 늘지 않으면 국민은 경제 회복을 실감하기 어렵다. 하루 빨리 경제회복을 선언하고 싶은 MB로서는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지율을 올리는 데 톡톡한 재미를 봤던 ‘친서민 정책’이란 측면에서도 일자리 창출은 시급한 과제다. 서민과 소외계층의 마음을 붙잡고 지지 기반을 넓히기 위해서는 이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만 한 게 없다. 고용이 회복되는 내년 하반기까지 손 놓고 기다릴 여유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 각 부처를 다그쳐 일자리를 만들라는 것이다.

문제는 정부가 만드는 일자리는 불안정하고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재정을 동원해 희망근로자와 청년인턴,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무한정 지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 이런 일자리가 번듯한 일자리이기는 어렵다. 사실상 경기침체기에나 임시로 쓰는 응급처방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일자리 만들기의 근본적인 처방은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고용을 늘릴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뿐이다. 정부가 그 답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내년도 경제운용계획에서 일자리 창출 항목의 맨 앞에 나오는 처방이 ‘서비스 산업 선진화’와 ‘유망 서비스업 육성’이다. 고용창출 효과가 큰 서비스업을 키우는 것이 일자리 만들기의 첩경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고 말았다. 일자리 창출에 매진하자고 나선 그날 바로 영리의료법인 도입이 또 무산된 것이다. 고품격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분야인 의료서비스업을 키우자면 영리법인을 허용해야 하는데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가 여전히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문제는 이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이 “더 논의해 보라”며 유보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영리법인을 허용하면) 서민들 사이에 가진 사람들이 더 혜택을 받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나 오해가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영리법인을 도입하지 않는다고 해서 서민들이 혜택을 더 받을 것도 없고, 이른바 가진 사람들이 혜택을 덜 받는 것도 아니다. 돈 있는 사람들은 지금도 얼마든지 해외에서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영리법인을 허용하지 않으면 국내 의료산업에 쓰여질 연간 1조원에 가까운 돈이 밖으로 새나가고, 그만큼 국내에 생길 수 있었던 좋은 일자리가 날아갈 뿐이다. 이제는 무엇이 진정으로 서민들을 위하는 길인지 다시 생각해 볼 때다. 서민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줄 것인지, 아니면 근거 없는 위화감을 이유로 이들의 일자리 기회를 걷어찰 것인지 말이다.

이런 식이라면 또 다른 유망 서비스업종인 교육이나 법률·방송·유통업에서도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는 어렵다. 일자리가 정히 중요하다면 서민들이 이런 번듯한 서비스업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지, 서민들이 이런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할 것이란 가정에 휘둘려선 안 된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