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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입주 15년 넘은 분당·일산 … 리모델링 지지부진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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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14일 오전 경기도 분당신도시 정자동 한솔 5단지 아파트. 단지 입구에 ‘리모델링 사업을 반드시 성공시키겠다’는 문구의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지난해 이 단지의 리모델링 공동 시공사로 선정된 건설회사 두 곳에서 붙인 것이다. 단지 내 상가에서 만난 입주민 장모(51)씨는 “아파트가 낡아 많은 주민이 리모델링을 원하는데도 왜 지지부진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분당·일산 등 수도권 1기 신도시에서 리모델링이 뜨거운 감자가 됐다. 주민들은 재건축과 같은 파격적인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으나 정부는 건물 안전 문제 등을 이유로 난색을 표한다. 접점을 찾지 못한 채 주민들의 불만만 쌓이고 있다.

신도시가 리모델링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07년 리모델링 연한이 준공 후 20년에서 15년으로 줄어들면서다. 1990년대 입주한 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 등 다섯 곳의 1기 신도시 아파트는 준공 40년이 지나야 재건축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리모델링이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유일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따라서 2007년부터 지금까지 1기 신도시 내 26개 단지 2만9631가구가 조합이나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다. 리모델링 시공사 선정을 앞둔 분당 야탑동 매화 1단지의 한 주민은 “리모델링이 끝나면 첨단 아파트로 바뀌기 때문에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사에 들어간 단지는 아직 한 곳도 없다. 주민들이 리모델링은 찬성하면서도 리모델링 효과의 불확실성 때문에 착공에 필요한 주민 동의율(80%)을 채우지 못하고 있어서다. 일반 분양분이 없는 리모델링은 주민이 비용을 모두 대야 하는데 리모델링 후 집 가치가 들인 돈에 훨씬 못 미칠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1기 신도시 리모델링연합회 유동규 회장은 “현재의 규정대로라면 리모델링은 비용 대비 효과가 크게 떨어진다”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허용한 범위까지 집 크기를 늘리기 어렵다는 점이다. 주택법으로는 전용면적의 30%까지 키울 수 있다. 그러나 리모델링으로 집 면적을 넓히려면 앞뒤로 늘릴 수밖에 없는데 동간 거리 규제 등으로 면적 확대에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위로 몇 개 층을 추가로 지을 수 있도록(수직 증축)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건물 층수를 높이면 앞뒤로 건물을 확장할 필요 없이 한 개 층의 주택 수를 줄여 가구별 집 크기를 늘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수직 증축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국토해양부 주택건설공급과 박진열 사무관은 “주민들이 요구하는 대로 건물을 3~4개 층 더 올릴 경우 무게가 30%나 늘어나므로 건물 안전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또 정부는 층수가 올라가면 고밀화돼 당초 도시계획에 따라 적정하게 배치된 스카이라인이 무너지는 것을 우려한다.

이런 가운데 일부에서는 집값을 끌어올리기 위해 소형 위주의 몇몇 단지가 리모델링 재료를 이용하는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윤영선 연구위원은 “리모델링은 자원의 재활용이라는 측면에서 친환경 녹색성장이라는 요즘 화두와 딱 들어맞다”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리모델링 제도 개선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함종선·권이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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