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부처, 외국인 노동자 대책에 이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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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외국인 근로자 인권침해 문제를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지시 이후 정부부처는 "대책을 마련하겠다" 는 데에는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논의가 구체적 방안에 이르면 정부 부처끼리 이견을 보이는가 하면, 정부부처와 외국인노동자 보호단체가, 또 이들을 고용하는 사업주측의 견해가 서로 다르다.

우선 노동부와 외국인대책협의회(외노협)는 현행 산업연수생제를 없애고 고용허가제를 도입, 이들을 연수생 신분이 아닌 노동자로 인정해 노동관계법에 근거한 보호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연수생이라는 불안한 신분과 월평균 37만6천원의 저임금(수당포함 60만9천원) 상황아래서는 현 직장을 이탈해 조건이 나은 다른 사업장으로 불법 취업하는 악순환이 멈추지 않으리라는 인식 때문이다.

노동부 김경선 사무관은 "업계에서 필요로 하는 외국 노동자 수요가 늘고 있는데 이들 모두를 연수생 신분으로 공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며 "현행 제도가 불법 취업자를 양산하고 결국 불법취업자에 인권침해가 시비의 대상이 되고 있는 만큼 연수생제도의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 고 지적했다.

한성대 박영범(노동경제학)교수도 "고용허가제를 통해 업체에서 필요로 하는 만큼 외국인 노동자를 데려다 쓰고 이들에게 합법적인 노동자 대우를 해주는게 바람직하다" 며 "대만은 1990년대 초 고용허가제를 도입해 인권침해 시비를 줄였으며 그에 따라 불법체류자도 전체 외국인 노동자의 10% 미만으로 줄였다" 고 소개했다.

한편 법무부는 "불법체류자 증가추세와 산업연수생 제도와는 근본적인 상관관계가 없다고 본다" 는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외국인력 국내 수입창구인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와 사업주측은 입장이 다르다.

고용허가제를 도입, 이들을 내국인 노동자와 동일하게 대우할 경우 고용비용 증가로 중소기업 부담만 늘고 도산업체가 속출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는 주된 이유인 저임금 혜택이 사라진다는 것.

중기협 외국인력협력단의 임종헌 부장은 "고용허가제가 도입돼도 근무환경과 저임금에 불만을 품은 사람은 불법취업할 가능성이 큰 만큼 현행 제도의 골격을 유지하면서 부분적인 보완책을 마련하는 게 바람직하다" 고 말했다.

중기협측은 ▶임금체불.폭행.폭언.강제근로 등 부당행위를 한 사업주 처벌을 강화하고▶부당행위를 세번 반복한 사업장은 외국인력 배정에서 제외하는 '3진 아웃제' 도입 등을 대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서울대 사회학과 설동훈 박사는 "현재의 연수생제도는 불법 취업자가 적법한 산업연수생보다 숫자도 많고 급여수준도 20% 가량 높은 비정상적인 제도" 라며 "제도 보완과 함께 외국인 노동자를 배척하거나 비하하는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아야 할 것" 이라고 지적했다.

외노협의 이정호 신부도 "제조업.건설업.어업 등 열악한 근로조건에 필요한 노동력을 외국인으로 채우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 이라면서 "값싼 인력을 마음껏 부려먹겠다는 생각을 고쳐 외국인 근로자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며 노동자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고 말했다.

신동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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