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면’ 선생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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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호 10면

중학교 때 국어를 가르쳤던 선생님은 별명이 ‘예를 들면 선생님’이었다. 무엇을 설명할 때면 곧잘 예시를 들었다. 한 문장을 말씀하시면 다음 문장을 시작하기 전에 “예를 들면 말이지” 하면서 운을 떼고 잠시 숨을 돌리셨다. 그 잠시의 숨돌림에 천방지축 아이들은 하나같이 숨을 죽였다. “예를 들면”이란 선생님의 말씀은 곧 새롭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것을 알리는 일종의 예고편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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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행동이 일치하기란 어렵다. 아니, 말과 말이 일치하기도 쉽지 않다. 좀 전에 자신이 한 말을 배반하는 말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하는가? 식언이란 어쩌면 앞에 한 말을 나중 하는 말이 먹어버리는 것을 일컫는 것인지 모르겠다.

식언을 밥 먹듯 하는 사람이 많다. 예를 들면, 내가 아는 한 비평가는 “쉽게 말하자면”이라고 해놓고는 더 어렵게 말한다. TV에 자주 나오는 어느 정치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계속 “끝으로” “마지막으로”라고 하면서 좀체 이야기를 끝낼 줄 모른다. 식언이다. 이런 것들에 비하면 집안 아제의 식언은 차라리 귀여웠다. 아제는 “막말로 말해서”라는 말을 골초의 담배처럼 입에 달고 살지만 나는 지금까지 아제가 막말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이렇듯 ‘언언일치’는 어렵다. 예를 들면 선생님을 빼고는 말이다.

어느 초여름 선생님은 집중의 효과를 강조하는 이야기를 꺼내셨다.
“집중의 위력은 대단하단다. 예를 들면 말이지. 기찻길 옆 오막살이라는 노래 알지? 그 노래 이상하단 생각해 보지 않았니? 잘 생각해 봐. 칙폭 칙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기차소리가 그렇게 요란한데 바로 그 기찻길 옆 오막살이에서 자는 아기가 잘도 자는 게 이상하지 않아? 오막살이집에 방음장치가 되어있는 것도 아닐 텐데. 그게 바로 집중의 힘이란 거야. 그 아기는 집중해서 자기 때문이지. 그러니까 아무리 기차소리가 요란해도 아기는 잘도 잘 수 있는 거란다.”

언젠가 여인숙 옆방에서 들려오는 남녀의 간절하고 다급한 신음과 숨소리 때문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할 때 나는 기찻길 옆 오막살이를 떠올리며 집중해서 자려고 애썼으나 허사였다. 그러니 선생님이 든 예가 반드시 적절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아무튼 선생님은 예를 든다고 하시면 꼭 예를 드셨다.

‘예를 들면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내가 일본에 있을 때였다. 그 무렵 내 형편이 옹색해서 선생님의 장례에 참석할 수 없었다. 묘소 앞에 술잔이나마 올릴 수 있게 된 것은 한국에 돌아오고도 몇 년이 지난 후였다. 못난 제자는 선생님의 묘비명을 읽고는 터져 나오는 웃음과 울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예를 들어 말하기를 좋아한 예시 선생, 잠들다. 예를 들면, 여기 이렇게.”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대한민국 유부남헌장』과 『남편생태보고서』책을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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