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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별후 '5·18 부부'된 김성수·이수남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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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제 저 파릇한 새싹들을 보고 살아요. "

17일 광주시 북구 운정동 5.18묘지. 참배온 김성수(金成洙.68.광주민중항쟁 상이 유족회장)-이수남(李壽男.63)부부의 다짐이다.

두 사람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여파로 새로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됐다. 이들은 두 묘소를 옮겨가며 헌화하고 분향했다. 5.18로 저세상에 먼저 간 金씨의 아내와 李씨의 남편 묘를 찾아서다.

"5.18 상처가 덧나지 않게 서로 감싸주지 않았다면 모진 세월을 이겨내지 못했을 거예요" "하늘나라에 있는 두 사람도 이해해 주리라 믿어요" -. 이들은 맞잡은 손을 애써 꼭 쥐었다.

金씨는 1980년 5월 22일 광주~담양 국도에서 다섯살배기 막내딸을 업은 부인과 트럭에 타고 있다가 계엄군의 총탄에 함께 맞았다.

후유증으로 고생하던 아내는 85년 12월 숨졌다. 딸은 하반신이 마비되고 金씨 자신도 옆구리에 상처를 입었다. 이후 金씨는 휠체어에 의지한 딸과 함께 국회 광주청문회 등에 나가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데 앞장섰다.

현재의 부인 李씨를 만난 것은 89년말께. 李씨는 5.18 당시 우유대리점을 하던 남편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중앙선을 넘어온 군인 차량에 치여 숨지면서 홀로 사는 신세였다. 6남매를 데리고 살 길이 막막했던 李씨는 5.18상이유족회 사무실을 찾아갔다가 회장인 金씨를 만났다.

李씨는 "공교롭게도 먼저 간 남편과 金회장이 닭띠 동갑인 데다 돌아가신 金회장 부인도 나와 같은 나이여서 고충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었던 것같다" 고 말했다.

李씨는 자녀들을 뒷바라지하느라 방직공장.식당 등을 다니면서도 5.18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촉구 시위 등에 꼭 참석했고, 두 사람의 사이는 가까워졌다.

서먹서먹하던 金씨의 9남매와 李씨 자녀들은 차츰 두 사람의 인연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92년 9월에는 金씨의 회갑잔치를 함께 마련하기도 했다.

李씨의 큰아들 朴광용(41)씨는 "양아버지가 가족들의 버팀목 역할을 해주셨다" 며 "두분이 황혼에 더욱 행복하시리라 믿는다" 고 말했다.

부상한 金씨의 막내딸은 TV 등에 나가 씩씩하게 5.18을 증언했었고 좀 더 큰 꿈을 향해 대학 문을 두드리고 있다. 지난해 5.18 회원들과 함께 특전사 부대를 방문, 화해의 물결을 이끌었던 金씨는 올해는 군인들과 함께 5.18묘역을 청소했다.

金씨는 "신세대들에게 5.18의 의미를 깨우쳐 주는 재미가 쏠쏠하다" 며 "앞으로 영남지역을 여행삼아 돌며 지역감정을 없애는 일을 하겠다" 고 말했다.

광주〓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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