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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휴전선이 있었네] 2.어서오라 하나의 푸른 강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오늘도 해가 진다

숨찬 능선들

골짜기들

휴전선 1백55마일에 해가 진다

내 피붙이 임진강물이여

백마고지여

대성산

바람찬 향로봉이여

저 건너 해금강 어여쁜 섬들이여

그 언제까지 이것이어야 하나

미움의 세월

서로 총구멍 맞대어

풀이 먼저 살아나고

나무들이 탄식처럼 돌아왔다

오늘도

휴전선 가시철망 1백55마일에 묵묵히 해가 진다

새로 여기에 올 내일이 아니라면

내 어이 노래하나

어서 오라 오고야 말 하나의 푸른 강산

그 이름이여…

고은<시인>

몇번이나 나 자신에게 물었다. 왜 네가 여기에 왔느냐고.대지는 한없이 푸르렀다. 가는 데마다 어김없이 눈시린 신록이 우리를 불러 이것 말고 어디에 행복이 있느냐고 물었고 나는 나 자신에게 우리가 살아온 날들의 오랜 상흔(傷痕)을 물어야 했다.

온통 연초록과 초록의 산등성이 여기저기 산벚꽃이 뼈저리게 화사했고 그 아래 쪽으로는 하얀 조팝나무 꽃더미가 이따금 나타났다. 정녕 꿈 속이었다.

이렇게 휴전선 비무장지대 1백55마일의 얼굴이 있었다. 조국의 허리에 걸친 원한이 만들어낸 절경 속으로 휴전선의 말뚝은 서쪽 강화도 교동앞 끝 섬에서부터 강원도 고성 동북단 바닷가까지 처절하게 이어져 있었다.

이것을 위하여 3백만의 목숨이 싸움터에 바쳐졌고 무지무지한 피해가 함께 했던 것이다.

그런 휴전선을 두고 각각 2㎞씩 물러난 한계선 철책에 막혀 그 안이 비무장지대(DMZ)다. 75%의 산악지대에 초지와 습지로만 구성된 이곳은 바로 다름아닌 분단의 가혹함이 낳은 자연스런 결과물이었다.

이름하여 '비무장지대' 라고 하나 실상은 가장 적의(敵意)에 찬 전천후 경계태세로 무장된 공간이다.

후방의 하루하루가 각자의 이기적인 일상으로 보내어질 때 이곳의 하루하루는 어쩌자고 한순간도 잠들지 못하는 긴박한 시간 그것이었다.

이제 전쟁 3년, 휴전 47년의 모진 세월이 갔다. 10대 후반의 나는 60대 후반에 이르렀다. 내 또래 50년대 청춘은 남한의 학도병과 북한의 인민군으로 그 절반쯤이 싸움터에서 사라졌다.

이런 시대를 살아남은 나는 원죄처럼 그 전시체제의 본심(本心)으로부터 아주 멀리 떠나지 못했다. 그럼에도 휴전선 일대는 세계에서 몇째 안가는 생태계의 모범이 되어 온갖 식생(植生)과 짐승과 새들의 현란한 낙원이었다.

혹은 말하리라. 아직까지 너희는 그 싸움의 잔재에 사로잡혀 있느냐고. 혹은 말하리라. 아직까지 너희는 갈라져 땅덩이 합치지 못하는 어리석은 분단 그대로냐고.

그러나 나는 이번 휴전선 편력으로 하나의 확신을 얻었다. 우리가 겪은 동족상잔의 전쟁과 오랜 대립의 휴전이 그로 인한 막대한 손실에도 불구하고 그 분단의 비극적인 삶을 통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아니, 이 비극 없이는 우리의 현재는 더 절실할 수 없으며 우리의 미래는 더욱 궁핍(窮乏)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지구상에서 마지막 남은 이 냉전의 산물이야말로 우리 민족사가 세계사 속에서 하나의 역사 교향악을 연주하는 장엄한 시대를 위한 선험(先驗)일 것이다. 비극없는 영광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판문점 건너 개성과 동북단 최전망 351고지에서 금강산 비로봉을 바라보면서 이제까지 우리가 견뎌온 쓰라린 시간들이야말로 있어야 할 과거였고 반드시 있어야 할 미래의 시작임을 깨쳐야 했다.

[답사자 명단]

▶강요배(화가)

▶고은(시인)

▶공지영(소설가)

▶김귀곤(서울대 교수.환경생태학)

▶승효상(건축가)

▶안병욱(가톨릭대 교수.한국사)

▶유홍준(영남대 교수.미술사)

▶이종석(세종연구소 연구위원.남북관계)

▶중앙일보〓김준범(정치부 부장대우).안성식(사진부 기자) <가나다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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