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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詩)가 있는 아침 ] - '절간 이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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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조오현(1932~ ) '절간 이야기' 전문

어느 날 아침 게으른 세수를 하고 대야의 물을 버리기 위해 담장가로 갔더니 때마침 풀섶에 앉았던 청개구리 한 마리가 화들짝 놀라 담장 높이만큼이나 폴짝 뛰어오르더니 거기 담쟁이덩굴에 살푼 앉는가 했더니 어느 사이 미끄러지듯 잎 뒤에 바짝 엎드려 숨을 할딱거리는 것을 보고 그놈 참 신기하다 참 신기하다 감탄을 연거푸 했지만 그놈 청개구리를 제(題)하여 시조 한 수를 지어 보려고 며칠을 끙끙거렸지만 끝내 짓지 못하였습니다. 그놈 청개구리 한 마리의 삶을 이 세상 그 어떤 언어로도 몇 겁(劫)을 두고 찬미할지라도 다 찬미할 수 없음을 어렴풋이나마 느꼈습니다.



백담사에 간 지도 오래 되었다. 어느 여름 오현당께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는 족자와 함께 흰 모시 잠옷을 하사한 적이 있었다. 때를 묻히기 황송해서 모시옷은 선운사의 법현당께 보내고 말았다. 나로서는 청개구리 생명 하나도 지켜내기 부끄럽다는 생각에서다. 이건 '절간 이야기'가 아니라 세속 이야기다. 할!

송수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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