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주년 맞는 5·18] 中.대중문화에 분 변화의 바람-연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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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광주민주화운동 20년 기념작 '봄날' (임철우 원작.김아라 연출)이 지난 3월 국립극장 대극장 무대에 오른 것을 두고 연극계에서는 '사건' 이라고 부른다.

보수적 이미지가 짙었던 국립극장이 광주의 비극을 정면에서 다룬 작품에 무대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20년이 지난 후에야 서울 연극계가 광주를 제대로 조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5.18이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은 엄청난 사건임에도 광주를 돌아보는 연극계의 작업은 아직 활발하지 못하다.

올해도 5.18에 맞춰 공연되는 화제작은 '5월의 신부' (18~27일 예술의전당 야외극장 특설무대)와 '봄날' (18~20일 광주 문예회관)정도.

그간 '5월 광주' 를 다룬 연극은 광주를 중심으로 펼쳐졌다. 88년 광주에서 선보인 놀이패 신명의 마당극 '일어서는 사람들' 과 극단 토박이의 '금희의 5월' 은 선구적 작품이다.

이전까지는 5공 군사정권의 서슬이 퍼래 연극인들은 광주를 대놓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87년부터 거세진 민주화 요구가 연극계의 숨통을 다소 트게 한 것.

서울에선 광주항쟁을 주로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연출가 기국서(극단 76)의 '햄릿' 시리즈가 대표적인 경우. 형을 살해하고 권력을 잡은 내용의 셰익스피어 원작 '햄릿' 의 틀을 빌려 부정한 권력을 폭로했다.

그는 권인숙 성고문사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등 당대 초미의 관심사를 퍼포먼스로 소화한 '방관' 시리즈를 내놓아 주목받았다.

90년대에는 비교적 자유로워진 사회 분위기에서 뮤지컬 등 대형 상업극이 득세함에 따라 광주민주화운동 등 현대사의 그늘을 짚어낸 작품은 거의 공연되지 못했다.

연극평론가 안치운씨는 "연극인들에게 광주는 원죄 의식과도 비슷하지만 아직 공연의 성과는 모두 빈약한 편" 이라며 "이제라도 광주의 상처를 연극으로 치유하고 교훈을 살려내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고 말했다.

이영기.박정호.정재왈.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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