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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창작촌 탐방] 4. 부산 근교 조각가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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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작품은 팔리지 않지만 우리는 전업작가다. 제작비용도 생활비도 아르바이트로 벌지만 순수.현대미술을 지향한다. 언젠가는 좋은 날도 오겠지."

부산 근교 두곳에 집단 창작촌을 이룬 30세 안팎 조각가들의 믿음이다.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 오리마을의 오리 작가촌에 15명, 부산시 강서구 녹산동 작가촌에 7명이 모여있다.

농가의 버려진 축사를 개조한 작업실에서 땀흘리고 고민하고 대화한다. 거의 전원이 동아대 출신 조각가다.

오리 작가촌은 농가 다섯 채를 세내 한 채에 2~4명씩 함께 쓰고 있다.

이곳에서 농사짓는 부모와 함께 사는 정동명(30)씨가 축사에 작업실을 만든 것이 시초다.

1997년부터 박은생.문병탁씨를 필두로 박상호.김민성.김성룡.정장영.정윤선.엄태익.손정수.김태균.임설희.임현희씨가 모였다.

지난 연말엔 김영지.박재현씨가 합류했고 곧 부산대 출신 2명이 새 식구가 될 예정이다.

25~31세의 젊은이들로 한명을 제외하고 모두 미혼이다.

부산 시내에서 30분 거리지만 월세가 5만원인 것이 큰 장점. "새로운 재료로 작업할 때 다른 경험자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된다" (정장영) "공모전 개최.재료 구입처.아르바이트에 관한 정보를 교환한다" (엄태익)는 이점도 있다.

아르바이트는 필수. 전시회를 하려면 재료비만 1백만원이 넘게 들기 때문이다.

학원이나 고교의 미술강사는 그래도 낫다. 간판일도 하고 공사판에서 막노동도 한다.

성과도 있다. 정동명씨가 지난 10일 발표된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조각부문 우수상을 받은 것. 정씨와 김민성씨는 지난 연말 개인전을 열었다.

박은생씨는 98년 제9회 부산 청년미술상을 받았고, 박상호씨는 지난 연말 대안공간 '섬' 이 주최한 제1회 신인공모전에 당선됐다.

문병탁씨는 환경조각가로 국제적인 인정을 받고 있다.

이들은 오는 7월 초 대안공간 전시장 '아트 인 오리' 를 개관할 예정이다.

정동명씨가 자신의 작업실 20평을 제공한 것. "너무 크거나 냄새가 나거나 벽을 허물어야 해 일반 전시장에서 받아주지 않는 작품을 위한 공간이죠. 큐레이터도 초청해 작품을 보여줄 겁니다. 인정을 받아야 초대전도 열 수 있을 것 아닙니까."

부산 근교에서 젊은 작가들이 처음 모여 둥지를 튼 곳은 강서구 녹산동 작가촌. 최근 부산광역시에 편입됐지만 농촌풍경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92~93년 당시 20대 후반이던 고 주명우씨를 비롯, 박상환.김종구.강이수.곽순곤씨 등이 축사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그 후 이들은 흩어졌지만 2~3년 전부터 모인 30세 안팎의 7명이 뒤를 이어 작업하고 있다.

정용국.신무경.김경민씨 등은 부일미술대전과 부산미술대전에서 수상했다.

40평 짜리 작업장 2곳에서 이들과 서상호.원상훈.김도형.이승주씨가 창작의 혼을 불사른다.

좌장격인 서상호씨는 설치미술가, 나머지는 모두 조각가다.

이들은 주 1~2회씩 기장의 작가들과 만나 정보와 의견을 나눈다. 서씨는 모여 사는 장점으로 "외롭지 않고 서로 자극을 받는 것" 을 꼽는다.

예술적으로 인정받기가 쉽지 않아 외로움을 느낄 때 묵묵히 쇠를 용접하고 돌을 다듬는 동료들을 보면서 위안과 힘을 얻는다는 것이다.

기장〓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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