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칼럼] '린다 김' 뒷심 발휘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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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고인이 된 시인 기형도는 '전문가' 라는 시에서 빛나는 유리로 만든 담장에 사는 사람을 묘사한다.

그 사람은 담장 앞 골목에서 노는 아이들이 유리를 깨더라도 갈아끼우면 되니까 마음 놓고 놀라고 한다.

유리담장을 견고한 담으로 바꾸자고 제의한 아이들은 골목에서 추방된다.

시일이 지난 후 아이들은 그 사람의 충실한 부하가 되고 그가 유리담장을 떼어냈을 때, 그 골목은 가장 햇빛이 안드는 곳임이 판명됐다.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우리의 분단상황이 연상된다.

우리는 눈에 쉽게 보이는 세상에 익숙해 있을 뿐 날카로운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대치한 분단상황을 일상으로 의식하기는 어렵다.

골목 안에서 아이들을 놀게 하는 대신 시 속의 '전문가' 는 골목을 차단하고 있는 유리담장을 관리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한국 사회의 경계선인 분단의 담장 관리는 국가안보의 영역에 속하고 전문가의 손에 맡겨져 있다.

전문가가 과연 관리를 잘 하고 있는 것인지 내부로부터의 감시와 성찰이 없으면 한국 사회는 '풍성한 햇빛을 복사해 내는' 유리담장의 빛에 현혹돼 있을 뿐 실제로는 가장 햇빛이 안드는 골목이 돼 버릴지도 모른다.

중앙일보의 특종인 린다 김 로비 의혹사건은 본질적으로 이와 같은 전문가의 관리상황을 규명해 보고자 하는 내부자의 노력으로서 언론 본연의 역할을 수행했다.

로비 의혹과 관련한 백두사업(통신감청용 정찰기 도입사업)은 미국이 독점하고 있는 북한정보 수집으로부터 한국군이 독립을 하고자 신호정보수집 정찰기를 도입한 것인데, 감사원은 일찍이 백두사업에 의해 도입한 장비가 성능미달이라는 지적을 했다(중앙일보 1998년 12월 3일자).

중앙일보가 보도한 전 국방부장관의 인터뷰 내용 등에 의하면 전문가의 영역에 속하는 사업 결정과정에서의 불법 로비의혹은 분명히 확인된다.

사설에서 적절히 지적했듯 린다 김 의혹에 관한 전면 재수사, 로비의혹과 관련한 백두사업 전반에 관한 특별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수사나 특별조사가 시작됐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이러한 침묵 속의 방치가 계속되면서 중앙일보의 특종보도 자체가 기형도의 시에서 유리담장을 견고한 담으로 바꾸자고 제의했다가 골목에서 추방당한 아이들의 초라한 뒷모습이 돼버릴까 우려된다.

이와 같은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두가지 관점에서 신문의 노력이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린다 김 의혹사건이 본질적으로 전문가의 영역을 파헤치는 일로서 그만큼 내부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뛰어넘는 조사가 요구되기 때문에 조사 자체가 매우 어렵다는 점을 인식하고 보도에 임하는 것이다.

이미 98년도 하반기에 백두사업에 관한 불법로비 의혹이 제기돼 전면수사를 한다고 했으나(중앙일보 98년 10월 13일자 및 11월 15일자) 그후 흐지부지되고 린다 김에게 군사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몇몇 군장교들만 재판을 받았고, 린다 김에 대한 불구속 기소는 그 직후에 이뤄졌다.

이는 수사기관 내부에서 오래 전에 일단락해 버린 사건의 배후를 캐는 어려운 싸움인 것이다.

이와 같은 사정을 인식한다면, 향후 이 문제를 우리가 누구에게 어떻게 조사하고 해결하게 할 것인가를 다루는 방향으로 보도를 계속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 한가지는 심혈을 기울인 심층취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보도과정에서 선정적 스캔들이 주된 내용인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는 잘못을 범한 일면이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시정하는 것이다.

백두사업과 관련한 로비의혹 사건은 로비스트 자체의 문제이기에 앞서 국가안보와 관련된 관리자들의 불법행위 여부가 그 본질임에도 '미녀 로비스트' '린다 김에게 보낸 연서들' '미모.매너.언어 3박자의 여성로비스트' '린다 김 영화배우로도 활동' '사우나 인터뷰' 등의 표현으로 여성 로비스트라는 선정적 흥미에 치우치게 했기 때문이다.

향후 이 두가지 관점을 반영하는 보도를 계속해주길 기대한다.

강금실 <변호사.지평법률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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