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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풍류탑골 (23)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23. 장기전의 명수

견인불발(堅忍不拔)의 달인 이시영 시인이 화를 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사건이었다.

또한 그 일은 그것으로 종결되었다. 오죽하면 주정하던 후배시인도 놀라서 아무런 말도 못했고 고개를 꺾었으랴. 주변의 동료 문인들은 황급히 자리를 정돈하였다. 전혀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화를 내면 상대는 무조건 잘못을 저지른 것이 틀림없는 분위기가 되고 말지 않는가.

그러나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나는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이시영 시인이 싸우려고 하는 모습이 너무나 진지했고 야릇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마을 뒷산 소나무 아래서 사내 아이들이 한번 뛰자고 합의한 뒤 서로 싸우다가 넘어지면 다친다며 솔방울을 주워서 멀리 던진 다음 상대를 노려보며 씩씩거리던 풍경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분들은 모두 나이는 먹었지만, 백사장에 나앉아 희게 빛을 뿜는 조약돌과 모래에 엉덩이를 맡기고 드러누워 장난치다가 별 것 아닌 이유로 엉겨 싸우는 아이들과 조금도 다름없는 만년 소년들이었다.

그렇게 모범적인 이시영 시인도 송기원 시인과 함께 술을 마시는 날은 달랐다.

두 사람은 대학시절부터 절친한 친구였는데 어찌 보면 서로 너무도 달랐고 어찌 보면 너무나 닮았다.

당시는 송기원 시인이 실천문학의 실질적인 대표였고, 이시영 시인도 창작과비평사의 핵심적인 중추였으므로 늘 후배들과 함께 어울렸기 때문에 둘이서 오붓하게 마시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서로 너무 바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두 사람과 한 두 명쯤 더 어울려 왔을 때는 그야말로 두주불사였다. 2박 3일도 좋고 3박 4일도 좋았다. 그쯤 술을 마실 때면 이시영 시인이 아주 쓸쓸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어이 복희, 지금 문밖으로 그림자들이 왔다갔다 하는데 누구지? 김사인.박남철.강태형.김남일이 왔다갔다 하는데, 맞아?"

그러나 그 순간 아무도 그 옆을 지나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거명한 사람들은 어제 저녁 혹은 이틀 전에 같이 술을 마시며 정담을 나눈 이들로 이미 각자 집으로 간 뒤였다. 너무나 오랜 시간 취해 있어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선생님, 그 사람들은 어제 집으로 갔어요. 너무 취했어요. 이제 집으로 가셔야죠. "

내가 이렇게 말하면 내 얼굴을 한참 보다가 "맞아, 집에 가야지" 하며 주섬주섬 옷을 입고 일어났다.

그러다가 앞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송기원 시인을 보고 "야, 기원아. 술은 그만 마시고 노래하자" 며 노래를 시작했다.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헤어지지 말자고 맹세를 하고 다짐을 하던 너와 내가 아니더냐. 손목을 잡고…. " '해운대 엘레지' 란 노래였는데 바리톤 풍 그 노래가 익어갈 무렵이면 송기원 시인도 어느새 일어나 어깨 동무를 하고 한 손은 허리춤에 붙인 채 모둠발로 쫌쫌거리며 원을 그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오래도록 춤추고 노래했다.

사람들 속에서 그들의 불평불만을 듣는 것이 직업이었고 후배들은 물론 선배문인들을 보살피는 일이 주업이었던지라 한번쯤 그런 의무감을 털어내면서 술을 마시며 눈빛으로 서로 달랠 수 있는 이들끼리 나누는 한판의 난장이 아니었을까.

"반짝 반짝 작은별" 로 시작하는 동요를 부르면서 어린애 같은 춤을 추며 인생의 시계바늘을 되돌리려는 듯 퇴행성 유희를 즐겼던 것은 떠나온 길과 거리를 서로 눈 끝에 얹어주려는 것은 아니었을는지.

지금도 그 풍경을 떠올리면 가슴이 뭉클해지며 아름다움과 서러움이 밀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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