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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사막 남극을 찾아서]③펭귄마을을 찾아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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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남극은 전형적인 백야 현상을 보인다. 자정무렵 한두시간 약간 어두워 지지만 활동에는 지장이 전혀 없을 정도다. 12월 5일 아침 7시. 본관 휴게실에 있는 외부 기온을 보여주는 온도계가 영하 2도를 가리키고 있다. '포근한' 날씨다. 평소에도 아침 날씨는 이렇다고 한다. 그러나 바람이 불면 갑자기 체감온도가 영하 10도 이하로 뚝 떨어지기 때문에 옷매무새를 허투루 할 수는 없다.


잠을 잔 숙소동은 기둥을 세우고 약 1미터 정도 공중에 지어져 있다. 눈이 많이 와서 갇히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그래도 필자가 도착하기 얼마전 눈이 많이 와서 숙소 창문 밖으로 약 3미터 높이로 눈이 쌓여 있는 게 보인다. 건물 사이는 중장비를 동원해 눈을 치웠기 때문에 흙이 드러나 보인다.

숙소동 화장실에서 대충 얼굴을 씻는다. 이 물은 지난 1988년 세종기지가 세워질 때 현대건설이 식수용으로 만든 호수(현대호)에서 온 물이다. 현대호는 가로세로 약 50미터 정도로 눈이 녹은 물이 고이는 곳이다. 그래도 깊이가 10미터나 될 정도로 깊어 대원들의 식수는 부족하지 않다. 겨울에는 이 호수가 얼어 붙기 때문에 눈을 녹여 필요한 물을 구하거나 담수화설비를 이용해 바닷물을 민물로 바꿔 사용한다.

오후 3시. 썰매의 일종인 스키두와 설상차를 이용해 '펭귄마을'로 출발했다. 눈이 없으면 걸어서 30분 정도 거리지만 지금은 눈이 많이 쌓여 있어 장갑차처럼 생긴 설상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사진을 찍고 하기에는 불편해서 중간에 스키두로 옮겨 탔다. 스키두는 바람막이가 없다. 칼바람을 맞은 볼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펭귄마을에 도착하기 직전 웨델해표를 만났다. 해표 가운데 성질이 포악하지 않은 착한 녀석이란다. 사람을 보고서도 도망가지 않는다.


펭귄마을은 바닷가 좀 높은 언덕위에 있었다. 바람이 많이 불어 자그마한 자갈들이 깔려 있는 바닥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펭귄들은 눈이 쌓이지 않고 바닷가라 먹이 구하기 쉬운 이곳에 몰려 마을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자갈 위로는 녹색의 지의류가 덮여 있어 전체적인 색깔은 푸르다. 줄잡아 수백마리는 돼 보이는 펭귄들이 군데군데 몰려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녀석들의 분뇨 냄새가 확 풍겨왔다. 크릴 새우를 잡아 먹는 녀석들의 뒷처리 냄새는 지독했다.

하늘에는 펭귄 알을 훔치려는 스쿠아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선회하고 있었다. 그래도 녀석들은 아랑곳 하지 않는 모습들이다. 아장 아장 걸어다니거나 짐지어 태연하게 짝짓기 하는 녀석들도 보였다. 간 혹 한두 녀석이 울면 갑자기 여기 저기서 따라 울어댔다. 남극 한 켠이 "깩 깩"거리는 소리로 가득해 진다. 펭귄이 모여있는 곳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깨진 알을 발견했다. 알 속은 텅텅 비어있었다. 스쿠아들이 다 먹었기 때문이란다. 스쿠아는 남극 먹이사슬에서 가장 놓은 자리에 있는 최상층 포식자인 셈이다.

펭귄 마을은 세종기지에서 관리하고 있다. 관리라고 해야 무슨 특별한 것은 아니고 그냥 살펴보고 관찰하는 정도다.

박지환 자유기고가 jihwan_p@yahoo.co.kr

* 박지환씨는 헤럴드경제, 이데일리 등에서 기자를 했다. 인터넷 과학신문 사이언스타임즈에 ‘박지환 기자의 과학 뉴스 따라잡기’를 연재했다. 지난 2007년에는 북극을 다녀와 '북극곰도 모르는 북극 이야기'를 출간했다. 조인스닷컴은 내년 2월 초까지 박씨의 남극 일기를 연재할 예정이다.

[하얀 사막 남극을 찾아서]① 남극의 관문 푼타 아레나스
[하얀 사막 남극을 찾아서] ② 지구 남쪽 끝에서 마시는 소주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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