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광장] 요란한 전승 행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최근 모스크바 거리는 55주년을 맞는 제2차 세계대전 전승기념일(9일)과 관련된 포스터와 사진으로 요란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신임 대통령의 취임식은 뒷전이었다.

크렘린(대통령 행정실)의 한 고위 관리는 취임식 전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별다른 의미가 없는 의전 때문에 이틀 후의 훨씬 더 크고 중요한 행사(전승기념일 축제)가 빛을 잃어선 안된다" 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선지 7일 푸틴의 취임식은 외국 정상들도 초대하지 않은 채 비교적 간소하게 치러졌다.

러시아의 RTR방송은 취임식 중계가 끝나자 마자 전승기념일 준비 소식을 담은 특집 프로를 방송하기도 했다.

'훈족과 나폴레옹에 이어 나치 독일을 격멸한 불사조의 신화를 이룬 러시아-' . 아마도 러시아인들은 이번 전승기념일을 시발점으로 그러한 과거의 영광을 다시 찾아줄 '푸틴 시대' 가 개막되기를 열망한 것인지도 모른다.

확실히 이번 전승기념일 행사는 최근 10여년 중 가장 대규모로, 질서있게, 그리고 화려하게 준비됐다.

휴일만 되면 크렘린 앞 붉은 광장과 무명 용사의 묘엔 훈장을 주렁주렁 매단 노병들과 가족들의 기념촬영 인파가 몰렸다.

또 퍼레이드를 준비하기 위한 러시아군들의 열병 훈련과 이들을 실어나르는 군용차량의 이동도 빈번해 모스크바 일대는 마치 군과 군복, 전승의 향취에 젖은 '노병(老兵)의 도시' 로 변한 느낌이었다.

TV나 신문들도 55년 전 세계 최강의 군대라 일컬어지던 독일군을 격멸한 것은 바로 러시아였다는 사실을 흑백 종군영화 필름과 함께 연일 강조했다.

하지만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선 "과거의 영광을 강조하는 것은 좋지만 분위기가 너무 경직돼 권위주의적 통치시대가 연상된다" 는 반발도 없지 않다.

벌써부터 푸틴의 러시아가 '법치(法治)' 가 아닌 '인치(人治)' 의 시대로 회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김석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