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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풍류탑골 (20)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20.수수께기의 사나이.

하지만 김사인 시인이 그 말을 하는 시간은 매우 길었다. 단어 하나 하나 하나, 아니 한 음절 한 음절을 발음하려다가 삼키고, 삼켰다가 다시 소리내는 형국이어서 그 말을 듣는 사람이 답답할 지경이었다.

특히 고개를 45도쯤 내렸다가 슬그머니 들면서 말해 실례의 말이지만 약간 모자란 사람같이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더듬거려 완성한 말들은 씹을수록 맛이 있었다.

아무튼 여자 문인들이나 후배 혹은 선배 문인들과 같이 있을 때면 특별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서도 늘 중심에 있었다.

송기원선생 말처럼 특히 여자 문인들에게 인기(?)가 있어 늘 수수께끼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런 매력은 사람을 업무적으로나 성적으로 긴장시키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는 말도 느리고 행동도 굼떠 그야말로 전형적인 충청도 사람이었다.

특히 글쓰는 것이 느려서 사람들이 김사인에게 청탁하느니 차라리 팔만대장경에서 육법전서를 집자고 하는 것이 더 빠르다고 할만큼 애간장을 녹였다.

그러나 간간이 쓰인 글들은 그야말로 소쿠리에 담긴 알밤같은 것이어서 기다린 보람을 만끽하게 했으니 청탁을 할 수도 안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들 했다.

일과 무관한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천하태평이었다. 술을 마실 때도 그랬다.

성질이 급한 사람은 마시는 것도 취하는 것도 속전속결이었지만 김시인의 경우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쟁여 넣는다' 라고 말해야 옳을 것 같다.

한번은 5박6일 동안 탑골을 떠나지 않고 맥주와 소주를 번갈아 가며 흔들림없이 마신 일이 있었다.

소설가 김성동 선생도 술을 오래 마시지만 김시인의 경우는 그보다 더했다.

김성동 선생이 그 소식을 듣고 "좋아, 음주의 용맹정진이로고" 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서 사실상의 백기를 든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면 술을 마신 기간은 길었어도 양은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김성동 선생이 잔을 들으면 한숨에 쭉 들이켠 반면 김시인의 경우 양주 마시듯 천천히 음미하면서 마셨기 때문이다.

또 김성동 선생의 경우 가부좌를 틀고 앉아 지속적으로 마신 반면 김시인의 경우 술집에 온 다양한 팀을 옮겨 다니면서 마시고, 피곤하면 방에서도 탁자에서도 한참 자고 또 일어나서 마시곤 했기 때문이다.

그러기를 5박 6일이었으니….

더 우스운 일이 생각난다.

나흘이나 집에 들어가지 않아 내가 조바심이 나서 "집에 안가실거예요□" 라고 물으니 "나 아무디도 안가고 여기서 기냥지냥 살쳐" 라며 막무가내였다.

그쯤 되면 내가 어떻게 해볼 수도 없다.

결국 소반에다 마른 안주나 좀 챙겨놓고 주방에서 일하는 할머니와 나는 그냥 잠을 잤다.

그런데 한밤중에 일어나보니 김시인이 오른쪽 팔로 몸을 괴고 대접에 부어놓은 무엇을 빨대로 빨고 있었다. 맥주였다.

나는 막걸리를 빨대로 먹는다는 것은 알았지만 맥주를 빨대로 마시는 것은 처음 보았다.

"김사인씨! 왜 그래. 어떻게 맥주를 빨대로 마신다?"

"술잔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것이 당체 귀찮고 힘들잖여. 앉아있기도 너무 힘들고 그렇다고 술은 안마실 수 없으니께. 이렇게 먹어보니 편혀"

아무튼 김시인의 경우 우리를 정말 질리게 했다. 더욱 질리게 만든 것은 그 절묘한 노래솜씨였다.

'산유화' 나 '고향생각'같은 동요도 그가 부르면 가곡처럼 우아했고 '나성에 가면'같은 템포 빠른 노래는 잔잔한 연가로 바뀌었다.

더욱 우리를 매료시킨 것은 목소리였다.

감미로우면서도 동시에 우리의 폐부를 훑는 것 같은 슬픔의 그림자가 어려있어 노래 소리의 어떤 기슭에서 목매고 싶은 충동을 불러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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