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남북 정상회담 깊이읽기] 2.의제선정 어떻게 할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논의될 의제(議題)는 회담의 성격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남북한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사안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합의의 가능성만을 염두에 둔다면 될 수 있는 대로 논의의 폭을 좁히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합의 자체만을 의식해 의제를 제한한다면 회담 자체의 폭이 좁아질 수 있다.

남한측은 베를린선언에서 거론된 4대 과제, 즉 ▶당국간 협의를 통한 남북경제협력 ▶한반도 냉전종식과 평화정착 ▶이산가족 문제해결 ▶지속적인 남북 당국간 대화 등을 의제로 내놓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중 경제협력이 최우선 의제가 될 것이며 여기에는 농업협력, 사회간접자본투자, 법적.제도적 장치마련 등이 포함될 것이다. 비(非)정치.군사문제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정치.군사문제에 있어서도 냉전종식과 평화정착에서 남북기본합의서 내의 군사공동위 구성문제나 평화체제 구축문제도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북한측은 예비회담에서 '근본문제' 를 먼저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줄곧 내세워 온 3대 선행조건을 간접적으로 거론한 것이다. 3대 선행조건이란 ▶외세와의 공조파기 및 합동군사훈련 중지 ▶국가보안법 폐지 ▶통일운동의 자유보장 등 정치.군사적인 문제들이다.

정상회담을 기회로 북한측은 주한미군의 철수가 아니라 성격.지위를 바꾸기를 원한다는 입장을 밝힐 가능성도 있다. 장기수 송환문제도 북측에 의해 거론될 가능성이 높다.

만일 양측의 입장이 끝까지 평행선을 달린다면 의제 합의는 불가능할 것이다. 지금 예비회담이 시간을 끌고는 있지만 결국 타결을 보리라고 전망할 수 있는 것은 다행스럽게도 서로에게 전향적인 메시지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북한측이 이번 정상회담에 합의하면서 3대 선행조건을 전제로 삼지 않은 대목은 대남정책의 실용주의적인 전환으로 풀이된다.

명시적으로 거론하는 대신 '근본문제' 라는 우회적 표현을 사용한 것은 남측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자세로 해석된다.

남한측이 베를린 선언에서 제시한 4대과제도 따지고 보면 북한과 공유할 수 있는 접점을 찾아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평가할 수 있다.

따라서 의제선정 문제도 상호신뢰의 바탕 위에서 진지한 논의를 거친다면 원만한 합의가 도출될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정치.군사분야처럼 주장이 서로 다른 사안이라도 남북관계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상대방의 솔직한 입장을 들을 필요가 있는 것이라면 의제로 설정하도록 노력한다.

만약 회담에서 양측이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면 허심탄회하게 서로의 입장 차이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신뢰형성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미합의 사항은 앞으로의 과제로 남기고 합의된 것만 발표한다면 회담 성공의 장애가 되지도 않을 것이다.

이번 회담에서 양측의 의견접근 가능성이 큰 의제는 당국간 대화와 경제협력, 이산가족 상봉, 한반도평화선언 등이 될 것이다. 북한이 제기할 북.미평화협정체결 주장에 대해 남측은 중간단계로 한반도 평화선언 같은 것을 제기할 수도 있다.

이는 4자회담의 당사자인 미국.중국과도 관련된 복잡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경제협력은 북한측이 가장 중시하는 관심사이지만 체면상 남측의 제의를 받아들이는 형식을 취할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양측의 입장을 충족시키고 회담을 성공적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포괄적인 차원에서 의제선정 문제에 접근해야 할 것이다. 이미 양측은 정상회담 합의문에서 7.4남북공동성명의 3원칙을 확인하면서 '화해와 단합' '교류와 협력' '평화와 통일' 을 목적으로 밝히고 있다.

쌍방이 수용할 수 있으면서도 민감한 의제를 담아낼 수 있는 틀을 만들어내려는 남북 모두의 의지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같은 양측의 전향적 노력이 계속된다면 남북한 정부를 대표하는 최고 당국자간의 역사적인 회담이 어려움을 겪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서동만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북한정치)

◇ 의견.문의 및 관계기사 열람은 e-메일(project@joongang.co.kr), 팩스(02-751-5228), 조인스닷컴 홈페이지(http://www.joins.com)의 '남북정상회담' 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