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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사막 남극을 찾아서] ② 지구 남쪽 끝에서 마시는 소주 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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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타 아레나스의 하루는 무척 길다. 오전 3시면 여명이 시작돼 오후 11시 정도가 돼야 해가 완전히 진다. 낮이 무려 20시간이나 되는 것. 고위도 지방의 백야현상 때문이다. 또 자외선이 강해 썬크림은 필수다. 아침과 저녁 기온 차이도 매우 심하다. 아침은 초여름처럼 따뜻지만 저녁이면 강한 바람과 함께 싸락눈이 내리기도 할 정도로 춥다. 12월 3일. 우리는 세종기지로 보낼 물건을 컨테이너로 포장하는데 꼬박 하루를 보냈다. 이 곳은 자외선이 강해 썬크림은 필수다. 컨테이너로 14개 분량이다. 세종기지 사람들이 1년간 먹을 건조 및 냉동식품, 연료, 부두와 유류저장고 보강공사용 콘크리트 등이다. 긴급한 경우가 아니면 한국에서는 1년에 한 번 보급품을 전달한다.

세중기지까지 가는 바다는 험하고 거칠어 컨테이너를 쇠사슬로 묶고 단단히 연결했다. 세종기지에서 보내온 무전에 따르면 지금도 심한 눈바람이 불고 있다고 한다. 내일이면 세종기지로 출발한다. 필자와 지원팀 일행은 세종기지 월동대원들과 합류해 칠레 공군기를 타고 킹조지 섬에 있는 칠레 공군기지까지 날아간 뒤 날씨 상황을 봐서 보트를 타고 세종기지에 들어가게 된다. 날씨가 나쁠 경우 칠레 공군기지에 있는 호텔에서 무작정 기다려야 한다.

12월 4일 아침 9시. 푼타아레나스 극지연구소 현지 사무소를 출발해 물품을 실어나를 화물선을 최종확인하기 위해 항구로 갔다. 10시가 조금 넘어 현지 항만사무소로부터 운항 허가가 떨어졌다. 일행은 푼타아레나스 공항으로 출발했다. 일행이 탄 비행기는 우리나라 공수부대원이 적지 침투에 사용하는 것과 같은 기종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귀를 막지 않고는 견디기 힘든 프로펠러소리에 3시간이나 시달린 끝에 킹 조지섬에 착륙했다.

세종기지에서 나온 진영근 대장이 일행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여기 칠레기지에서 세종기지로 가기 위해서는 ‘조디악’이라는 자그마한 보트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보트를 타기 위해 해안가로 이동할 때 키가 50cm도 채 안돼 보이는 펭귄 두 마리가 아장아장 바다에서 해안으로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녀석들은 “남극에 어서 오세요”라고 인사하듯 일행 쪽을 바라 보았다. 자연상태의 펭귄은 처음 본다. 잠시후 남극의 도둑 갈매기라는 ‘수쿠아’ 한 쌍이 일행 옆에 내려 앉았다.

일행은 물에 빠져도 한동안 떠 있을 수 있는 우주복처럼 생긴 방수복을 입고 3팀으로 나눠 ‘조디악’에 승선했다. 세종기지까지는 한 시간 가량 가야 한다. 보트는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보다 더 심하게 덜컹 거렸다. "그래도 오늘은 바다가 잔잔한 편입니다" 배를 운행하는 대원의 말이다. 멀리 눈을 뒤집어 쓴 섬들이 보였다. 이미 여름에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일주일에 한두 번씩 눈이 내리고 있다고 운전하는 대원이 설명해 줬다.


마침내 세종기지! 월동대원들이 '고향 까마귀'들을 반겨줬다. 늘 사람이 그리운 그들일 테다. 대원들의 모습은 햇빛과 눈에 반사된 햇빛으로 검게 탔지만 건강하고 믿음직스러웠다. 잠깐 휴식을 취한 뒤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 자연환경을 파괴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썼다. 이곳에서는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면 절대 안된다. 남극의 자연환경은 척박해 한번 파괴되면 복구하는데 따뜻한 지역보다 수 십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교육이 끝나고 숙소를 배정받고 저녁식사. 첫날부터 강행군이다. 기지의 이름을 딴 식당 ‘세종회관’ 주방장이 김치찌개와 여러가지 반찬을 내놨다. 글자 그대로 포식을 했다. 추위에 떨면서 비행기와 배에 시달렸음에도 평소보다 더 강한 식욕을 느꼈다. 잠시후 월동대원들은 우리들을 위해 파티를 열었다. 맥주, 소주와 닭매운찜 안주. 지구 가장 남쪽에서 마시는 술맛이라니.


내일은 '남극 신사' 펭귄의 집단 서식지에 간다. 세종기지 대원들은 펭귄 서식지를 ‘펭귄 마을’이라고 부르며 관찰하고 있다. 펭귄 서식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환경부의 허가를 얻어야만 한다. 필자는 한국을 떠나기 전 극지연구소를 통해 펭귄마을을 방문해도 좋다는 환경부의 허가를 받았다.

박지환 자유기고가 jihwan_p@yahoo.co.kr

* 박지환씨는 헤럴드경제, 이데일리 등에서 기자를 했다. 인터넷 과학신문 사이언스타임즈에 ‘박지환 기자의 과학 뉴스 따라잡기’를 연재했다. 지난 2007년에는 북극을 다녀와 '북극곰도 모르는 북극 이야기'를 출간했다. 조인스닷컴은 내년 2월 초까지 박씨의 남극 일기를 연재할 예정이다.

[하얀 사막 남극을 찾아서]① 남극의 관문 푼타 아레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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