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개성·여유·합리적 가격이 명품 패션 거리 만들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3면

레스토랑과 개성 있는 소호 디자이너 가게, 분위기 있는 카페 등으로 유명한 가로수길이 패션 브랜드의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케이트 스페이드 외에도 LG패션의 TNGT가 이달 중순 대형 남녀복합 매장을 연다. 이미 제일모직과 바네사 브루노, 나인웨스트가 이곳에 터를 잡고 앉았다. 강남 최고의 명품 거리로 명성을 날렸던 ‘청담동 명품거리’에 빈 점포가 속속 나오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과시형보다 합리적 명품=태진인터내셔널 권영석 부사장은 “레빗 사장이 가로수길을 고집한 것은 뉴욕 소호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은 케이트 스페이드의 성격과 가로수길이 잘 들어맞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태진인터내셔널은 청담동에 명품 브랜드 루이까또즈 플래그십 스토어도 운영하고 있어 두 거리 간 차이점에 밝다. 권 부사장은 “청담동에 매장을 내는 것은 직접적인 매출 증대 효과보다는 브랜드 가치를 올리려는 의도인 반면, 가로수길 매장은 매출에도 큰 보탬이 된다”고 말했다. 태진인터내셔널의 이돈원 경영기획실 부장은 “케이트 스페이드 가로수길 매장은 한 달 4000만~5000만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며 “이 매장을 청담동에 냈을 경우 한 달에 2000만~3000만원의 매출밖에 올리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영업팀의 분석”이라고 말했다.

이에 비해 임대료는 청담동이 가로수길보다 20% 이상 비싸다. 경희공인중개사사무소 고효남 대표는 “2년 전과 비교하면 임대료가 150% 정도 올랐다”며 “33㎡짜리 중 가장 위치가 좋은 것은 보증금 6000만원, 월세는 350만원 정도 하지만 그나마 청담동보다는 싼 편”이라고 말했다.

이달 중순 LG패션 TNGT가 문을 여는 가로수길 매장 ‘어나더 파이브 베드룸’은 2층에 위치한 500㎡ 규모의 대형 매장이다. 올 초에는 제일모직이 프리미엄 아웃렛 ‘일모&까페’를 냈다. 이 매장에는 수입 멀티숍 ‘10 꼬르소꼬모’의 재고뿐 아니라 수입사업부와 레이디스 사업부가 운영하는 브랜드의 재고를 선별적으로 구성해 놓고 있다. 5월엔 프랑스 디자이너 의류 ‘바네사 브루노’의 상설 할인 매장이 들어섰다. LG패션 김인권 홍보팀장은 “가로수길의 부상은 최고급 명품보다는 합리적 가격대의 브랜드 패션이 뜨는 요즘 추세와도 관련이 있다”고 진단했다.

◆백화점도 벤치마킹=『가로수길이 뭔데 난리야?』(알마)라는 책에서 광고회사 TBWA코리아의 박웅현 총괄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가로수길이 뜬 이유를 ①해외 유학파들이 2006년 후반대부터 내기 시작한 뉴욕풍의 개성적 빈티지숍이 많고 ②청담동은 차로 돌아다니는 거리인 데 비해 가로수길은 주차 공간이 극히 협소해 걸어 다니는 거리로 천천히 둘러보면서 합리적 소비가 가능하며 ③유행을 반영하면서도 개성 강한 인테리어라는 볼거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점은 백화점까지 벤치마킹에 나서게 했다. 현대백화점은 2007년부터 가로수길을 찾는 젊은이들을 백화점으로 끌어오기 위해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가로수길을 누볐다. 2년여간의 조사와 대대적인 공사 끝에 5월 리뉴얼한 지하 2층은 인테리어부터 가로수길을 따라했다.

◆소호거리 개성 사라져 아쉬움도=‘세로수길’이란 새로운 용어도 등장했다. 가로수길의 대로변을 대기업과 패션 빅브랜드, 커피 전문점들이 장악하며 임대료가 올라 소호형 빈티지숍은 더 버티기 힘들게 됐다. 이들이 가로수길 사이사이 세로 골목으로 점점 퍼져 나간다고 해서 ‘세로수길’이란 별명으로 불린다. 이들 빈티지숍들이 파는 제품은 대량 생산된 제품이 아닌 디자이너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온리 원(하나밖에 없는)’ 상품들이 주류다. 경희공인중개사사무소 고 대표는 “디자이너 매장들은 골목으로 옮겨 가고 기성복 브랜드들이 대로변에 들어오려 하고 있지만 그나마 자리가 없어 주거용을 상점으로 개조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9월 문을 연 질 스튜어트 건물도 건설사 사옥으로 쓰던 것을 매장으로 개조한 경우. 태진인터내셔널 권 부사장은 “가로수길이 빈티지숍과 브랜드숍이 공존하며 서로 개성을 살린다면 서울을 대표하는 패션 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지영·김효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