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상봉통해 배우는 위민봉사의 어려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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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25일 한 경찰서에서 70대 어머니와 50대 딸이 헤어진지 44년만에 극적으로 만났다.

지난달 23일 이 딸이 어머니를 찾는다며 경찰서를 찾았다. 민원을 접한 경찰은 면사무소 호적부를 뒤지고 전산망을 조회해 소재를 찾아냈다. 그런데 후일담을 묻는 기자에게 담당 경찰관은 "보도를 자제해 달라" 며 통사정했다. 당사자들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생활고로 딸과 헤어진 뒤 재혼해 낳은 자식들 때문이었다.

한때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생이별을 한 가족들이 수십년이 지난 뒤 혈육을 찾아 나서는 경우가 늘고 있다. 요즘 들어 경찰이 전국 정보망을 활용해 이들의 소원을 푸는 데 일조하고 있다.

경북에서 헤어진 가족을 찾아준 건수만 지난해 1백17건이었으며 올 들어서도 벌써 48건에 이르고 있다.

지난달엔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에 사는 50대 교포가 "어머니가 죽기 전 헤어진 가족을 만나고 싶다" 며 봉화 포저리파출소를 찾아 꿈을 이뤘을 정도다.

이들은 대부분 경찰에 고마움을 표시하고 공개적으로 만남을 갖는다. 하지만 수소문한 뒤 아이러니하게도 만나기를 부담스러워 하고 거부하는 경우도 종종 생겨나고 있다. 44년만에 딸을 만나는 어머니는 며칠을 고민한 뒤 날짜를 잡았다.

부모가 자식을 찾거나 부부.형제간 만남은 성사돼도 자식이 어머니를 찾을 때는 거절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분석이다. 처음에는 인정을 하다가도 막상 언제, 어디서 만나겠냐고 물으면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기 일쑤라는 것.

한 경찰관은 "재혼해 자식을 둔 어머니가 만나기를 거부해 현재 추진중인 상봉이 무산될 것 같다" 며 "상봉사업을 통해 위민봉사의 어려움을 새로 배운다" 고 말했다.

안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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