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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피해받는 소수는 정의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정부 내에서 지역감정에 관한 괴상한 논리가 횡행하고 있는 것 같아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재야 출신인 김성재(金聖在)청와대 정책기획수석비서관은 이번 총선에서 나타난 영호남의 싹쓸이 현상을 두고 "호남의 단결과 영남의 단결을 똑같이 양비론(兩非論)으로 보는 것은 문제" 라면서 호남 싹쓸이를 두둔했다.

그는 흑인과 백인, 노동자와 기업주의 문제를 예로 들어 차별당하고 권리를 빼앗긴 전자의 단결과 차별하고 지배한 후자의 단결은 전혀 다르다면서 "소수의 단결은 정의적이고 다수의 단결은 불의적" 이라고 주장했다.

5.16 이후 40년간 차별당하고 억압당해 왔던 호남이 단결해 싹쓸이하는 것은 '정의' 라는 것이다.

金비서관의 주장은 현실적으로 맞지도 않지만 논리적으로도 비약이 심하다. 우선 영남 전체를 지배집단, 호남 전체를 피해집단으로 나누는 것은 위험한 지역주의적 분류법이 아닐 수 없다. 영남에도 민주화 투쟁이 있었고 피해받고 억압받은 세력이 있었다.

'소수의 단결은 정의' 라고 한 그의 논리는 더욱 문제다. 소수가 단결해 권익보호에 나설 수는 있다. 그렇다고 소수가 반드시, 언제나 정의로운 것은 아니다. 소수가 벌이는 폭력도 있고 피해자가 보이는 생떼도 숱하게 경험했다. 소수이고 피해자면 무조건 '정의적' 이라는 주장은 논리적 오류를 넘어 인식상의 오류다.

게다가 현실적으로 이번 선거는 호남 출신이 대통령이고 호남을 기반으로 한 정당이 집권당인 상황에서 치러졌다. 더욱이 싹쓸이의 모양새를 보면 호남에서는 다른 당이 발을 붙일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한 표밖에 얻지 못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金비서관의 표현대로 피해받은 소수는 '정의적' 이라면 '불의적' 단결을 한 다수지역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지역감정 해소방안을 내놔도 모자랄 판에 대통령의 정책기획수석이 한쪽을 '정의' 로 두둔하고 다른 지역을 '불의' 로 몰아붙인다면 지역갈등을 더욱 증폭시키는 역효과밖에 날 게 무엇이 있는가. 정부측의 충분한 설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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