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I 보고서 정부와 시각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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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4일 내놓은 '벤처산업 정책과제' 보고서는 벤처기업의 현황과 육성방향에 대해 정부와 시각차를 드러내고 있다.

보고서는 요컨대 이제 벤처를 정부가 직접 나서서 돕는 일은 그만둘 때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제 겨우 자란 싹을 꺾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며 정책기조를 바꿀 수 없다는 입장이고, 벤처업계도 "코스닥시장 침체로 사업계획에 차질을 빚는 벤처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다" 며 우려를 표명했다.

◇ KDI의 관점〓국내 벤처들이 '배를 곯던' 시대는 지났고, 사업내용이나 경영능력에 비해 자금이 초과공급되는 데 따른 부작용을 걱정할 상황이라는 판단이다.

과다한 자금공급이 본업과 무관한 업종에까지 손을 대게 하고, 기업가 정신을 흐트러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1년간 코스닥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벤처기업들은 증자와 공모를 통해 1조4천억원 이상의 자금을 끌어들였으며, 창업투자회사가 지난해 26개 추가돼 87개에 이르는 등 벤처기업에 대한 총지원 잔액이 1조4천4백74억원에 달했다.

KDI는 등록된 벤처기업의 증가가 곧 벤처창업 활성화를 뜻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지적했다. 우리나라 벤처기업 지정제도가 신규기업뿐 아니라 오래된 기업도 요건을 충족하면 되는 '독특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미국식 개념에 따라 벤처캐피털이 투자한 기업을 벤처기업으로 정의할 경우 국내 벤처기업의 17%만 해당된다.

벤처기업 활성화가 반드시 고용증대를 가져오는 것도 아니라는 지적이다.

벤처기업은 진입과 함께 퇴출도 활발하기 때문에 고용효과보다는 노동시장 유연화나 산업구조조정을 촉진하는 효과를 강조하는 게 바람직하다.

◇ KDI의 정책제안〓벤처기업의 범주는 국민경제적 파급효과가 큰 첨단기술 분야의 창업 초기 기업에 국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행법상 산업용세탁업.부동산감정업.부동산관리업.청소년수련시설 운영업까지 벤처지정이 가능한 것은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또하나 정부는 앞으로 벤처에 대한 투자.융자.조세감면 등 직접지원을 축소하는 대신 벤처산업 성장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하부구조의 개선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직접적인 자금지원보다는 공시제도를 강화하고 기초과학 및 인력개발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쪽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 정부와 벤처업계 입장〓정책방향을 바꿀 이유도, 계획도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이근경 재경부 차관보는 "일부 우려가 있는 것은 인정하지만 겨우 돋아난 싹을 꺾어선 안된다" 고 말했다.

李차관보는 "벤처기업의 거품은 생각보다 심하지 않으며, 그나마 최근 코스닥시장의 하락으로 적절히 제거되고 있다" 며 "우리의 경우 벤처기업의 80%가 제조업체이기 때문에 '닷컴' 이 주류인 미국보다 오히려 건실하다" 고 설명했다.

정보통신부 정보화기획실도 "정부의 역할이 완수됐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직접적인 지원정책쪽이 아닌 간접지원쪽은 끊임없이 계속돼야 한다고 본다" 고 강조했다.

벤처기업들도 대부분 아직 정부의 지원이 계속돼야 한다는 반응이다.

다만 인터넷 업체인 다음커뮤니케이션 이재웅 사장은 "애초부터 정부의 역할은 기초과학과 원천기술개발 지원, 규제완화에 맞춰졌어야 옳다.

지금이라도 그런 방향으로 간다면 바람직한 일이다. 민간에 맡길 부분은 맡기고, 정부는 여건조성에 전념해야 한다" 고 지적했다.

김광기.이원호.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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