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창작촌 탐방] 2. 경기도 포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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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창작은 따로 하지만 고민은 함께 한다.

경기도 포천에는 화가들끼리 모여사는 몇몇 '공동체' 가 있다.

극히 개인적인 창작을 하면서도 모여사는 이유는 울적할 때 술 한잔 기울이며 가슴 속 답답함을 토로할 수 있는 '동지' 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홍익대 미대 동창 시절부터 절친했던 장승택.박영률.이상기씨는 3년 전 의기투합해 신북면 삼정리에 땅을 샀다.

1천평 대지를 사이좋게 갈라 지은 조립식 주택 세 채는 둥근 지붕 등 외견상으론 비슷하지만 내부는 각자의 개성만큼 차이가 난다.

공동 생활의 수칙이 있다면 다른 사람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것이다.

"전화 걸지 않고 불쑥 방문하는 일은 절대 없다" 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한달에 1~2회 갖는 술자리는 가차없는 비평의 장이다.

박씨는 "어떤 저명한 평론가보다 두 동료의 얘기를 더 신뢰하게 된다. 그림 그리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는 사람들이기 때문" 이라고 말한다.

완성된 작품 하나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땀과 고민의 무게를 짐작하는 친구들이라는 얘기다.

이들은 앞으로 5년 정도 함께 생활하기로 암묵적인 약속을 했다.

서울 중심가까지 3시간 정도 소요되는 포천 생활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은 부러움 반, 우려 반. '전원주택' 을 지었으니 얼마나 좋으냐는 것과 한창 왕성하게 활동할 40대에 서울과 멀어지면 되겠느냐는 것이다.

"땅값이 싼 데다 대출받아서 지었으니 사치가 아니라 오히려 용기라고 생각해요. 화랑 거래가 잦아지면 몰라도 아직까지는 작품하는 데 주력해야 하니 번잡함 없는 이 곳이 오히려 좋아요. " 박씨의 확신섞인 설명이다.

창수면 가양리 이진경(33)씨의 작업실을 중심으로 10~20분 거리에 자리잡은 '이 동네 사람들' 멤버 5명은 정서적 유대뿐 아니라 생계도 함께 해결하는 일종의 '생활공동체' 다.

10여년 전 한옥과 축사를 개조해 이씨가 들어오면서 하나 둘 합류했다.

라면도 함께 끓여 먹고 전시회가 있으면 그림도 날라 주는 이웃사촌이다.

아직 데뷔하지 않은 사람도 있고 이씨처럼 개인전만 여섯 차례한 경우도 있다.

미국 유학파도 있고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 물론 이들은 경제적으로 넉넉한 편은 아니다.

차비만 들고 다닐 때가 많고 한달 생활비가 최고 30만원을 넘어본 적이 없지만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창작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이들을 단단하게 묶어주는 끈이 된다.

모두 "가난을 즐기면서 인내하는 것이 작가의 숙명" 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끔 이태원이나 청담동으로 핀 장사를 나가는 이씨를 비롯해 작업비 마련을 위해 공사판 노동을 하는 것쯤은 보통이다.

창작 비용을 마련하는 일은 이들의 공통 관심사다. 지난해엔 서울의 한 목욕탕 인테리어 작업을 함께 했다.

책 만들기는 반가운 일거리다.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거나 간단한 글을 써 각자의 재주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동네 사람들' 멤버들은 조만간 네팔로 창작여행을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포천〓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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