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의 선택/전시] 호돌이, 티머니, Hi Seoul 빚은 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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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지갑 속 카드부터 청와대 상징물까지, 이 사람이 디자인한 이미지가 한국인과 더불어 산다. 교통카드 ‘티머니’, 서울시 슬로건 ‘Hi Seoul’도 이 사람 손에서 시각 이미지로 거듭났다. 디자이너 김현(60·디자인파크 대표·사진)씨는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 저녁에 잠들 때까지 시선을 두는 곳곳에서 눈을 잡아 끄는 이미지를 창조했다. 기업이미지통합(CI)과 브랜드 아이덴티티(BI) 분야에서 첫 손 꼽히는 전문가가 그다.

그의 별명은 ‘호돌이 아빠’다. 김현이란 이름은 몰라도 1988년 서울올림픽 공식 마스코트인 ‘호돌이’는 누구나 안다. 메달을 목에 걸고 상모를 돌리며 동그란 눈을 반짝이는 호돌이는 김현씨가 35살 때 공모에서 당선해 그의 대표작이 됐다. 대기업 디자인실에서 일하던 그는 호돌이의 탄생과 함께 ‘디자인 파크’라는 사무실을 내고 400건이 넘는 기업 디자인 작업을 해왔다.

김현씨가 디자인한 1988년 서울올림픽 공식마스코트 ‘호돌이’ 캐릭터.

2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개막해 10일까지 이어지는 ‘김현 디자인 40년전·디자인파크 25년전·호랑이상품 제안전’은 디자인에 목숨을 걸었던 김현과 그의 작업실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인 잔치다. 밥 먹듯 밤샘을 하고 코 풀 듯 코피를 쏟으며 40년 외길을 걸어온 김현씨는 디자인을 한마디로 ‘끝없는 투쟁’이라고 정의했다.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맡겨주는 의뢰인, 즉 클라이언트가 있어야 시작되는 일이죠. 디자인에 힘을 반쯤 쓴다면 나머지 반은 의뢰인과 싸우느라 지치죠. 오죽하면 제가 ‘난 노예야’라고 했겠습니다. 남의 의지에 맞춰온 40년 생활을 이제 마감하고 제가 하고 싶은 디자인을 하며 살고 싶어요.”

이번 전시에 선보인 호랑이 상품이 바로 ‘김현 독립선언’의 첫 결과물이다. 2010년 ‘호랑이의 해’를 맞아 20여 년 만에 ‘호돌이’를 다시 불러냈다. 호랑이를 소재로 한 우산·넥타이·머플러·시계·찻잔·휴대폰·노트북 등 다양한 문화상품을 디자인했다. 세계 어디에 내놔도 꿀리지 않는 예술 상품을 만들겠다는 김현씨 마음이 담겨있다.

사진들은 한국 이미지. [디자인파크 제공]

“디자인은 마음과 정신으로 하는 겁니다. 손은 표현을 마무리하는 도구일 뿐이죠. 안 예쁜 걸 예쁜 것으로 화장시키는 게 디자인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이들이 의외로 많아 걱정스러워요.”

김현씨는 이번 전시가 끝나면 한달 쯤 암자에 들어가 디자인 인생 50년, 60년을 설계한다. 서울 인왕산 꼭대기에 사는 자신이 호랑이와 맺은 인연이 심상치 않다는 그는 “죽을 때까지 호랑이만 붙들고 있어도 좋겠다”고 했다.

정재숙 기자


전문가 한마디

한국 디자인계의 실력자들이 교육에만 관심 기울여온 일이 비극이라면 김현은 그 한계를 넘어 현장을 지키는 상징적 존재이다. 세련과 당당함으로 승부해온 한 디자이너의 반생이 여기 있다. (정병규 북디자이너·한국디자인네트워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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