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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지방에선] 영호남 미술교류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정부 중앙부처에서 장관 물망에 오르내리고 있는 대구출신 친구가 총선 개표가 끝난 이튿날 대구로 전화를 걸어왔다.

"도대체 대구사람들 투표를 왜 그 모양으로 하느냐" 는 볼멘 소리였다. 뒤집어 말하면 한군데쯤 아량을 갖고 여당후보를 뽑아주면 어디가 덧나느냐는 소리다. 물론 분위기만 놓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대구에 눌러있는 사람들 중에도 막상 찍어놓고 보니 좀 민망한 기분이 든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뜩이나 지역경제도 어려운데 예산지원 같은 실속을 생각 않고 '못 먹어도 고' 식으로 몰표를 찍어놓고 이제 어쩔 작정이냐며 걱정하는 말도 들린다.

과연 도시의 슬로건까지 '품위있는 도시' 로 내건 대구사람들이 '욱 하는' 성질만 살아서 몰표나 찍은 것일까.

투표란 말 그대로 민의를 표로 나타내는 것이고 그 결과가 어떤 것이든 민주국가에서는 그 결과 자체를 민의로서 인정하며 승복하고 그 민의를 어떻게 따라야 할 것이냐만 생각하면 된다. 왜 이렇게 찍었느냐, 저렇게 몰렸느냐를 따지는 것이야 말로 위험하고 비민주적인 시비다.

처음부터 이 지역에서는 저쪽 몇표, 저 지역에서는 이쪽 몇표 나와야 화합이 잘 된 투표라는 식으로 정해놓고 찍어야 한다면 애초부터 투표란 걸 할 필요도 없이 영호남 몇석씩 갈라 나누면 될 일이다.

한 도시의 민주적 의사표시를 놓고 그 도시의 품위와 시민의 양식을 논란하는 논리비약적인 편가름식 사고야말로 지역주의적인 사고다. 오히려 대구시민들은 영호남간의 '피장파장' 식 투표결과에서 그나마 여당후보들 쪽에 적잖이 표를 준 쪽이다.

결코 대구시민이 정권상실에 대한 박탈감이나 콤플렉스 속에서 한풀이식 투표나 할 만큼 패배주의에 젖은 집단은 아닌 것이다. 엊그제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는 영호남 미술 교류전이 열렸다.

광주 부시장과 호남 미술계 인사들이 대거 참가한 개막식에는 예정에 없던 대구시장도 일부러 짬을 내 참석했다.

"몰표는 나와도 문화교류에는 별 탈이 없네" 라는 시장의 한마디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리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뤘다. 대구의 깊은 인심은 바로 그런 것이다.

투표와 지역주의를 굳이 붙여서 해석하는 그 시각에서 이제는 벗어나 보자.

김정길<대구문화예술회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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