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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감상실' 사라져 간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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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1996년말부터 클래식 음악감상실로 사랑을 받아오던 서울 서초동 바하하우스(대표 최예린.02-522-1750)가 이달말로 문을 닫게 됐다.

운영이 여의치 않아 연간 5천만원의 적자를 견디지 못한 탓이다.

1백평 남짓한 규모의 바하하우스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던 '피아노 포르테' '슈베르트 마을' 등 주부.직장인.의사.학생 등으로 구성된 20여개의 고전음악 동호회도 오갈 곳이 없게 됐다.

주부들의 모임인 '라 디비나' 가 27일 가지는 모임이 마지막이 되는 셈. 동호회는 한때 예술의전당 서예관 문화사랑방으로 장소를 옮길 것을 검토했으나 대관료(1회 44만원, 오후 6시 이후는 48만원)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클래식 매니어인 방송인 황인용씨가 서울 평창동 토탈미술관 내에 마련했던 '카메라타' 도 지난해 문을 닫았다. 팔당 한강변에 한옥을 개조한 감상실 '유테르피' 도 최근 갤러리로 바뀌었다.

60~70년대 필하모니(서울 명동).르네상스(서울 종로)등 음악감상실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클래식 매니어들이 90년대 후반 잇달아 문을 열었던 카페식 음악감상실이 한계에 부닥친 것이다.

명동 필하모니에 이어 예음홀에서 음악감상회를 진행했던 김우경씨(세종대 대양홀 무대감독)는 "르네상스.필하모니 등 70년대 음악감상실에는 커피를 마시고 담소하는 휴게실이 따로 있어 콘서트홀에 와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감상 분위기가 좋았다" 며 "극장식 음악감상실과는 달리 최근에 문을 연 카페식 음악감상실은 커피를 마시면서 음악을 듣기 때문에 주위가 산만해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이 단점" 이라고 말했다.

음악평론가 민경찬씨는 "현대인들은 클래식 음악도 본격적으로 감상하기 보다는 생활의 일부로 배경음악처럼 듣는 경향이 있다" 며 "함께 모여서 음악을 듣는 '사랑방 문화' 도 사라진데다 오랜동안 음악을 집중적으로 들을 수 있는 여가시간도 없어져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고 말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55년째 문을 열고 있는 대구 화전동 녹향(053-424-1981)을 비롯해 일산 돌체(0344-902-4953), 서울 방배동 르네상스(02-582-1750), 서울 봉천동 신포니아(02-886-6842), 부산 장전동 마술피리(051-516-7889)등이 음악감상실의 명맥을 간신히 이어가고 있다.

특히 이 가운데 음악평론가 양현호씨가 운영하는 르네상스는 카페식 음악감상실에서 탈피, 규모는 작지만 바흐를 집중적으로 감상하는 음악강좌를 개설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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