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다중인격 범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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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미국 뉴욕타임스지는 지난달 주디 카스텔리(50)라는 한 여성을 화제에 올렸다.

그녀의 직업은 화가.조각가.가수.작곡가.작가.발명가.이벤트기획가.교사 등 10여가지에 이른다.

놀라운 것은 카스텔리가 44개의 인격을 가진 다중(多重)인격자로 진단받은 정신장애인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자기 안에 숨겨진 '44명' 때문에 고통받아 오다 30대에 들어서야 다중인격을 다양한 방면에의 예술창작으로 승화시킨 인간승리의 주인공이었다.

다중인격장애(Multiple Personality Disorder)는 보다 정확히는 분리성 정체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라고 부른다. 통합돼 전체성을 유지해야 할 인간의 정신상태가 일시적 또는 지속적으로 따로 노는 상태다.

다중인격이라면 선과 악의 극단적 이중인격을 그린 영국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씨' (1886년)가 먼저 연상되지만, 현대에 들어와서도 소설.영화.드라마의 소재로 각광받고 있다.

영화 '양들의 침묵' 이나 '사이코' 를 상기하면 될 것이다. '쉬리' 의 여주인공 이방희가 이명현이라는 전혀 다른 인격을 가진 것도 다중인격을 응용한 것이다.

16개의 다중인격을 가진 여성을 소재로 한 셜리 아델 메이슨의 베스트셀러 '시빌' (1973년)은 일반대중이 다중인격에 큰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됐다. 메이슨은 재작년 죽기 전 소설의 모델이 바로 자신이라고 털어놓아 또한번 화제를 불렀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중인격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나 '내 안의 또 다른 나' 를 느낄 때가 있다.

인기가수 조성모의 히트곡 '가시나무' 도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로 시작한다. 그러나 다중인격에 대한 관심은 자칫 엽기적(獵奇的)으로 흐르기 쉽고, 범죄를 다룬 영화나 소설에서 특히 그렇다. 이 때문에 미국에선 정신의학자들이 단체로 할리우드 영화계에 항의한 적도 있다.

일본에서는 97년 어린 소녀 4명을 유괴살해한 34세의 남성에 대해 정신과 의사들이 다중인격이다, 아니다 하고 엇갈린 진단을 내놓아 큰 논란을 불렀다. 당시 법원은 '완전한 책임능력이 인정된다' 며 단호히 사형을 선고했다.

한 '살인마' 가 10개월간 무려 9명을 살해했다고 자백해 우리 사회를 경악케 하고 있다. "내 안에 악마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고 말한 그가 혹시 다중인격자는 아닐까. 그렇게라도 상상하는 것은 범행이 너무도 잔혹해 같은 하늘을 이고 살던 사람이 저지른 것으론 도저히 믿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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