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김대중 대통령에 바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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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4.13 총선에서 나타난 민심은 양극적(兩極的)이다. 영남과 호남 두 지역에서는 한 당이 싹쓸이하는 배타적인 지역감정의 고착화 현상이 나타났는가 하면 수도권과 중부지역에서는 그런 지역감정을 퇴출시키고자 하는 총선시민연대의 낙선운동이 성공을 거두는 등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현상이 동시에 표출됐다. 따라서 이번 총선의 결과는 한마디로 지역감정의 승리이며 기존정치권의 패배라고 볼 수 있다.

김대중(金大中)정부는 이 결과를 토대로 심각한 자기반성을 해야 한다. 구차한 변명보다는 민심을 있는 그대로 겸허하게 수용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이번 총선은 어느 한쪽의 승리라고 볼 수 없다.

제1당이 되지 못한 것은 작은 패배에 불과하다. 작은 패배에 연연해 남은 임기 동안 큰 성공을 거둘 개혁작업에 차질을 빚어서는 안될 것이다. 따라서 작은 패배에 집착하는 인위적 정계개편 따위는 시도하지 않는 게 좋다.

현 정권은 지난 2년간 국정이 원활하게 수행되지 못한 이유가 소수의석 탓이라고 보고 다수의석에 지나친 집착을 보였고 공동정권이라는 기형적 정국운행까지 시도했다.

그러나 결과는 결코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번에도 의원 빼가기를 시도하거나 선거사범처리에서 검찰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들 경우 심각한 정치적 반발과 정국경색을 초래할 수 있다. 무리한 정계개편 시도보다는 야당과의 경쟁적 공존을 모색하는 폭넓은 자세가 중요하다.

그 다음 김대중 정부와 집권 민주당은 지역감정 고착화의 밑바탕을 흐르고 있는 반(反)DJ정서를 읽어야 한다. 이번 총선에서 영남사람들은 "이를 악물고 투표를 했다" 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인사편중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는 수차례 걸쳐 편파인사가 없으며 과거의 불균형을 시정해 균형을 잡아가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특정 고교간의 감투싸움 스캔들까지 나올 정도로 차별인사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현상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역작용이 영남표의 '단결' 로 굳어졌다는 사실을 반성의 자료로 삼아야 한다.

따라서 金대통령은 인사탕평책을 펴는 대규모 인사쇄신을 통해 지역 전체를 감싸는 인사 포용정책을 펴기 바란다.

정부는 출범 초 시작한 여러 가지 개혁정책을 중단없이 완수해 나가야 한다. 그동안 미뤄졌던 금융 및 재벌 구조조정 등을 제대로 추진해야 하며 사회개혁정책 또한 뒷마무리를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소수정부가 범하기 쉬운, 국민을 직접 상대하려는 포퓰리즘에 호소하려는 유혹을 물리쳐야 한다. 대중동원방식은 자칫 초법적일 수 있으며 법적 질서의 혼란과 무리수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는 환란(換亂)을 성공적으로 극복해냈으며 대북 포용정책은 남북 정상회담으로 열매를 맺어가고 있다. 金대통령이 이같은 국민적 합의와 지지를 바탕으로 신뢰의 정치를 펼 경우 그가 절실하게 원했던 개혁정치를 완성해 나갈 수 있으리라고 우리는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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