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대 당선자 의식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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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6대 국회는 어떤 모습일까. 본사 기획취재팀이 4.13 총선 당선자를 상대로 한 긴급 전화설문조사 결과 16대 국회는 지금까지와 다른 진보적 색채를 띠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우리 군의 주적(主敵)개념에 변화가 와야 한다고 대답하는 이들이 4명 중 1명일 정도다. 누구를 적으로 보느냐는 주적관은 우리의 안보관으로 직결된다.

기성 정치인들이 다수 탈락한 가운데 386세대 등 이른바 대학운동권 세대와 시민운동가들의 대거 진출로 당선자들의 컬러가 바뀐 점이 이같은 변화를 낳고 있다.

6월로 예정된 남북 정상회담과 함께 남북간 화해분위기가 본격화할 경우의 환경변화도 16대 국회가 단순한 색깔논쟁에 치우치지 않고 통일을 준비할 수 있게 할 요인이다.

그러나 주한미군 철수 반대, 보안법의 소폭 개정 등 보수적인 시각도 상당했다.

이번 국회가 진보와 보수 두 개의 축으로 재편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북한의 취약한 사회간접자본(인프라)건설 지원을 위해선 국민 세금을 동원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많은 것도 보수 시각의 반영이다.

◇ 주적 개념의 변화조짐〓대부분은 '시기상조' 라는 점을 들어 북한으로 특정하고 있는 군의 주적을 바꿔선 곤란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한나라당 이부영 의원 등 대다수는 "남북간 평화분위기가 확실히 정착돼야만 주적개념의 변화가 가능하다" 고 말했다. 북한의 위협이 엄연한 상황에서 정상회담 성사만으로 분위기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란 지적들이다.

그러나 이재정 민주당 정책위의장 등 재야 출신들과 386세대 등 대학운동권 출신들 중엔 더 이상 북한을 적으로 간주할 수만은 없지 않으냐고 보는 이들이 많았다.

한나라당 비례대표 15명 중 5명도 이같은 입장이었다.

◇ 주한미군의 인정〓10명 중 7명꼴로 주한미군은 앞으로도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주한미군 철수가 가져올 안보공백을 우려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민주당 김원길 의원 등 대부분은 "주한미군은 대(對)북한 문제만은 아니며, 동북아시아 전체의 안정이란 관점에서 검토해야 한다" 는 고민을 내비쳤다.

당선자들은 "중국.일본.러시아 등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우리의 지정학적 요건을 고려해야 한다" 고 말했다. 북한과의 군축 실현을 위해 주한미군은 철수해야 한다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앞으로 남북간 회담에서 불거질 이 문제에 대한 입법부의 입장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 보안법 개정과 대북 경제지원 승인〓16대 국회가 직면할 첫 이슈들이다. 전면개정을 주장하는 이들도 14%나 됐지만 전체적으론 소폭 개정이 다수였다. 북한의 태도변화가 없는 한 우리가 앞질러 갈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당선자들 중 절반 이상이 북한 인프라 지원에 국민 세금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낸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민주당 당선자 중에는 '국민 혈세를 쓰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고 응답한 이들도 상당수였다.

그러나 이마저 "외국자본 유치와 민간자본 유치 등 다른 수단들이 모두 동원된 뒤에나 쓸 방법" 이란 전제를 단 조건부 찬성이 많았다.

◇ 여야의 대권 후보〓조사응답대로라면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차기 대권 후보가 될 것으로 여야 당선자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수도권과 충청권의 선전을 이끈 이인제 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에 대해선 민주당 당선자들조차 절반 이상이 부정과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앞으로 전개될 여권의 복잡한 후계자 경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한나라당 당선자 중 80% 가량은 "李위원장이 결국 이용만 당하고 팽(烹)당하고 말 것" 이라고 예상했다.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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