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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한·미 의사소통 문제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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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북한 월탄리 폭발사건이 일어난 지 일주일이 지나도록 진상은 오리무중이다. 이번 폭발이 지난번 용천역 사고와 달리 인명피해가 드러나지 않았는데도 훨씬 큰 관심을 끄는 이유는 사건의 배후와 발생 시점이 석연치 않기 때문이다. 그것이 가장 우려스러운 핵실험이었는지, 우발적인 사고에 의한 폭발 피해였는지, 아니면 북한의 주장대로 공사 차원의 발파 작업이었는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북한이 뒤늦게 내놓은 해명이 신통치 않고 뭔가를 숨기고 있는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용천 사고 후 6개월도 안 돼서, 그것도 '성스러운' 건국기념일(9월 9일)을 즈음해 대형 사고를 당한 것이 부끄러워서라면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그 폭발과 버섯구름이 핵능력을 자체적으로 확인하거나 은연중 외부에 과시하고자 하는 핵실험의 결과라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이 지경까지 왔으니 적당히 해서는 타협이 어려울 것이라는 협상용 메시지로 간주해야 할지, 아니면 이제 인도.파키스탄처럼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것인지 문제가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이렇듯 중대한 문제라면 한국과 미국은 사태 발생 초기 단계부터 함께 긴밀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적극적으로 보여줬어야 했다. 양국이 긴요한 정보를 이미 다 함께 나누어 보고 있다는 확신만 줬어도 국민의 걱정은 덜했을 것이다. 12일 사건이 한국에 알려지게 된 것은 북한 사정에 밝다고 하는 중국의 한 소식통에 의해서라고 한다. 부랴부랴 소문이 사실로 판명되면서 통일부에 시선이 쏠렸을 때 당국자들은 이제 막 소식을 접했고 확인 중이라는 대답을 했다. 기자들과 거의 동시에 새로운 사실을 접했다는 증거다. 이때 미국 정부가 보인 반응은 참으로 미묘하다. 파월 국무장관은 그것은 핵실험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한국정부는 이제 막 사흘이 넘게 지난 일을 처음 알게 된 순간 미국은 이미 조사를 끝낸 사람이 결론을 브리핑하듯이 얘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크리스토퍼 힐 주한 미 대사도 핵과는 관계없는 단순 사고로 파악하고 있다면서 구체적인 원인은 계속 파악하는 중이라고 했다.

미국은 왜 이 사건을 미리 알고도 한국에 알리지 않았는가. 그리고 지금 늦게라도 문제를 완전히 파악해 진상을 밝혀야 하는 시점에서 한.미 양국 간 정보공유와 의사소통은 허물없이 이뤄지고 있는가.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을 종합할 때 한국은 찍은 사진을 미국에 전달했지만 미국은 확보해 둔 보다 선명한 촬영사진을 우리 정부에 보여줬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미국이 한반도 상공에서 가동하고 있는 첩보.조기경보 위성들은 이미 사고 현지의 깨끗한 정황을 담고 있을 텐데도 왜 우리의 아리랑 1호는 구름에 가려 하얗게 나온 사진밖에 없어 날씨가 개면 다시 찍어 보아야 사태를 파악할 수 있겠노라고 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한.미 양국이 평소 긴밀한 공조를 펴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결정적인 사건, 위기가 닥쳤을 때도 허물없는 얘기가 오갈 수 있는 사이가 돼야 진정한 동맹관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충 가까운 사람과는 오히려 격식을 갖춰 인사치레하고, 정말 친한 친구에게는 숨은 고민을 제일 먼저 털어놓는 법이다. 국가 간 관계도 사람이 하는 일이고 보면 많은 부분 심리적 요소에 좌우되고, 그래서 평소 신뢰관계를 착실히 쌓아두는 것이 중요하다. 민감한 일이 터지니 동포라고 감쌌던 북한은 상대도 안 해 주고, 알고 있을 것 같은 중국은 대꾸도 하지 않는다. 한.미관계를 기본적인 문제부터 점검해 다시는 이러한 정보의 고립무원(孤立無援)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금 한.미동맹 관계는 도처에 도전 요인을 안고 있다. 이라크 파병은 결국 해냈는데 너무 어려운 과정을 거쳐 자신없게 보냈다. 북한을 도우면서도 핵을 꾸짖자니 논리가 궁색하다. 주한미군은 마구 줄고 있는데 장차 어떠한 한.미 군사관계를 도모할지 합의된 청사진이 없다. 이제는 말보다 행동을 앞세워 신뢰를 키워 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 행동은 믿음을 담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쌓여갈 때 양국은 더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다.

김태효 외교안보연구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