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도 완치될 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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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정신병만큼 편견이 심한 질환도 드물다.

사이코에서 텔미섬씽까지 범죄영화의 단골 소재는 이러한 일반인의 편견을 부채질하기까지 한다.

지난 한 주는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제정한 정신보건 주간. 전문의들은 정신질환도 다른 질병처럼 완치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이들에게 적극적인 치료와 재활을 권유한다.

일반인이 정신질환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상식과 재활을 위한 가이드를 들어본다.

◇ 정신병은 드문 질환이다〓단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정신병은 흔한 질환이다.

대표적인 질환으로 우울증을 들 수 있다.

남성은 10명 중 1명이, 여성은 10명중 2명이 일생에 한 번 이상 치료가 필요하다.

망상과 환청에 시달리는 정신분열병이나 특정장소에서 급작스런 불안발작을 일으키는 공황장애의 발생율도 1%나 된다.

이들 질환이 각각 1백명중 1명에게 발생한다는 의미. 사회적 손실도 막대하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인 연세대의대 정신과 민성길교수는 "하버드대 연구진이 장애기간과 치료비 등 특정질병이 경제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결과 우울증이 암이나 심장병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조울증 6위, 정신분열병 9위 등 정신질환이 전체 10대 질환 중 3개나 포함됐다.

◇ 정신질환자는 위험하다〓정신질환자에게서 난폭한 범죄를 연상하는 것은 범죄영화가 빚어낸 대표적 편견이다.

살인 등 범죄는 망상에 시달리는 일부 정신분열병 환자에게 충동적으로 나타날 뿐 고도의 지능이 요구되는 치밀한 범죄는 찾아볼 수 없다.

한양대의대 정신과 양병환교수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일반 인구의 절반 이하로 나타난다" 며 "불안에 떨고 있는 정신질환자는 오히려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약자" 라고 강조했다.

◇ 정신병은 부끄러운 질환이다〓감기가 기관지에 생긴 병이라면 정신병은 뇌에 생긴 병일 뿐이다.

오히려 감기처럼 다른 사람에게 전염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회적 해악도 훨씬 덜하다.

부모들의 그릇된 죄의식도 문제다. 서울중앙병원 정신과 김창윤교수는 "많은 부모들이 어릴 때 가정환경이 나쁘거나 교육이 잘못돼 자녀에게 정신병이 생긴다고 믿고 있다" 고 지적했다.

현대의학은 대부분의 정신질환을 후천적 환경보다 뇌의 기능에 이상이 생긴 것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 정신병은 치료가 어렵다〓효과적인 신약의 잇단 등장으로 정신분열병 등 난치성 정신질환을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있게 됐다.

'정신병〓난치병' 은 옛말이란 것. 김교수는 "약물치료를 받을 경우 정신분열병 환자 4명중 3명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 고 강조했다.

정신질환 역시 조기치료가 중요하다.

감추고 쉬쉬하며 치료를 게을리하다 증상이 악화될 경우 약물치료를 받아도 치료성적이 나빠지기 때문. 망상이나 환청 등 증상이 나타나면 바로 의사를 찾는 것이 좋다.

◇ 우울하거나 부끄럼을 타는 것은 병이 아니다〓우울증이나 부끄럼증처럼 성격에 관련된 문제라도 생활에 지장을 초래한다면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고려대의대 정신과 이민수교수는 "특별한 이유없이 우울하거나 실직 등 이유가 있더라도 수개월 이상 우울증이 지속된다면 치료가 필요한 병적 우울증" 이라고 설명했다.

부끄럼증도 마찬가지.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오광수교수는 "과도한 부끄럼증으로 사회생활이 어렵다면 치료가 필요한 대인공포증으로 분류된다" 고 말했다.

보도블록에 금을 밟지 않고 걸어야 마음이 편한 강박장애, 물건을 훔칠때 쾌감을 느끼는 도벽, 불이 타는 장면을 즐기는 방화광 등도 모두 정신질환의 일종이며 약물요법을 통해 치료가 가능하다.

홍혜걸 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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