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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 마크] 외국 기업들의 '약자 보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7면

프랑스계 건축자재 업체인 라파즈코리아는 올해 초 구매담당 경력 사원을 채용하면서 임신 5개월의 구민숙 차장(34)을 채용했다.

국내기업과 외국계 기업에서 8년 이상 구매업무를 맡아 온 구차장은 높은 경쟁을 뚫고 일자리를 잡았지만 입사 4개월 만에 출산휴가에 들어갔다.

라파즈의 인사담당자는 "단기적으로 보면 구차장을 채용할 경우 회사의 비용이 증가할 수 밖에 없다" 며 "그러나 구씨의 능력이 뛰어나고 여성의 임신이 채용에 마이너스가 될 수 없다는 판단을 했다" 고 밝혔다.

외국계 기업들의 약자(弱者)에 대한 보호는 철저하다. 종업원은 물론 고객 보호도 각별하다.

외식 체인인 TGI 프라이데이즈는 1992년 양재동에 1호점을 오픈할 때부터 시각 장애인 고객을 위한 점자 메뉴를 제작해 사용하고 있다.

지금도 모든 매장에 점자메뉴를 배치해놓아 시각 장애인들이 음식을 주문하는데 불편함을 없애고 장애인 전용 주차 공간을 마련해 놓고 있다.

또 국내 기업의 상당수가 본사 건물을 '클린 빌딩' 으로 정해 흡연 장소를 완전히 없앴지만 외국계 기업은 대부분 흡연 장소를 별도로 마련해놓고 있다.

흡연자도 고통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에 취항하는 일본항공(JAL)을 비롯한 일본계 항공업체들은 비행시간이 6시간을 넘는 장거리 국제노선에는 별도의 흡연공간을 마련하거나 아예 흡연자 전용 항공기를 띄우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노스웨스트항공의 한국지사는 98년부터 한국 펄벅재단에 가입된 혼혈아가 미국에 가거나 미국에 사는 후원인들이 한국에 올 때 항공권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노스웨스트 관계자는 "소외된 아동과 미국 후원자들 과의 교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한국노선 취항 50주년을 계기로 이 무료서비스를 시작했다" 고 말했다.

그러나 외국계 기업 홍보대행사인 메디컴의 권기정 컨설턴트는 "외국계 기업들의 약자(弱者)에 대한 보호는 이중적 구조를 갖고 있다" 고 지적했다.

소비자나 사내 직원에 대한 차별은 없지만 정작 상당수의 외국기업들이 한국 법률의 장애자 의무고용는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

미쓰이물산 한국법인의 오카다 지로(岡田治郞)사장은 "시장원리와 생산효율 측면에서 장애자 의무고용은 행정 규제의 하나" 라며 "범칙금을 무는 외국기업들이 적지 않다" 고 말했다.

이철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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