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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노래하고 길에서 음반 팔지요‘그냥 좋아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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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좋아서 하는 밴드’의 공연장소는 당연히 매번 바뀐다. 클럽(club.cyworld.com/joaband)에서 공연일정을 확인하고 당일 전화하면,멤버들이 직접 공연 장소를 안내해준다. 왼쪽부터 황수정(베이스), 조준호(보컬), 안복진(아코디언), 손현(기타). [영화사 진진 제공]

‘좋아서 하는 밴드’라는 팀 이름은 거리에서 탄생했다. 서울 청계천 인근, 여느 날처럼 악기를 펼쳐놓고 공연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한 관객이 물었다. “근데, 팀 이름이 뭡니까?” “아, 저희는 그냥 좋아서 하는 밴드인데요.” “그래요? 이름 참 멋지네요.” 팀 이름이 없어 고민 중이던 이들은, 괜찮은데 싶어 즉석에서 밴드명을 정해버렸다.

그들은 거리에서 노래하고 거리에서 음반을 판다. 거리에서 음악을 만들고, 연습도 거리에서 한다. 지난 2년여 서울 이 동네 저 동네, 전국 이곳 저곳을 돌며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버스킹(Busking·거리공연) 전문밴드 ‘좋아서 하는 밴드’다. 길에서 만난 이들이 이제 ‘고정팬’이 됐고, 지난 4월에는 첫 싱글 ‘신문배달’도 발표했다. 최근에는 EBS의 ‘헬로루키’ 연말결선에서 인기상을 탔고, 다음달 17일에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 ‘좋아서 만든 영화’도 개봉한다. 한참 바빠진 이들을 지난 26일 서울 홍익대 앞의 한 클럽공연에서 만났다. 요즘 이들은 잠시 거리를 떠나 실내로 들어왔다. 왜? 길에서 노래하기엔 너무 추운 계절이라서다.

◆짐을 풀면, 무대가 된다=멤버는 넷이다. 타악기를 두드리며 노래하는 조준호(26)가 기타를 치는 같은 과(중앙대 심리학과) 동기 손현(28)과 먼저 거리공연을 시작했다. 대학에서 실용음악을 전공하는 안복진(25)이 피아노 대신 아코디언을 들고 합류했고, 마지막으로 여러 밴드의 세션으로 일하던 베이시스트 황수정(26)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서울의 홍익대 앞 놀이터와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용산구 효창공원 등 사람들이 모일 만한 곳이면 어디서든 공연을 했고, 초대장도 없이 무작정 지방 축제들을 찾아 다녔다. ‘좋아서 만든 영화’(고달우·김모모 감독)는 지난해 이들이 떠난 첫 전국투어의 여정을 담은 영화다.

“작년 가을에 밴드가 처음 차를 샀어요. 차가 생긴 기념으로 지방 버스킹을 떠나면서 영상으로 남겨두면 재미있을 것 같아 아는 형에게 ‘3박 4일간만 찍어달라’고 부탁했죠. (조준호)” 다행히(?) 여행길에 차가 고장 나고, 구청직원에게 쫓겨나는 등 다양한 사건이 터졌고, 촬영 기간이 1년으로 늘며 ‘배우 데뷔’ 기회까지 잡게 됐다.

◆거리의 악사로 살아남는 법=영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이들의 공연은 꽤 비주얼하다. 거리악사들답게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는 독특한 악기를 사용하고, 노래 역시 크고 호소력 있게 부른다. “마이크도 엠프도 없이 공연하다 보니 자연스레 생겨난 노하우”다.

노랫말도 사랑을 고백하기 전 갑자기 터져 나온 딸꾹질(‘딸꾹질’), 정든 옥탑방을 떠나는 기분(‘옥탑방에서’), 일상에서 느끼는 작은 회환(‘달콤한 것들은 모두 녹아내려’) 등,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거리 공연에서는 반응이 직접적이죠. 노래를 듣다 사람들이 그냥 가버리려 하면, 멤버들이 갑자기 눈에서 불을 뿜어요(웃음). 어떻게 해야 사람들을 붙잡아 둘 수 있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좋아해주지? 그런 고민들이 모이면서 우리 음악이 완성되는 것 같아요.”(황수정)

첫 음반은 팬들 700여명이 음반을 선주문하며 보내준 돈으로 만들었다. 아는 카페를 빌려 밤새 녹음했고, 음반이 나온 후엔 감사를 표하러 서울에 사는 팬들을 일일이 찾아 다니며 음반을 직접 배달했다. “서울 지도 하나 달랑 들고 팬들과 한 명 한 명 통화하며 찾아갔어요. 직접 팬들을 만나 사인 CD를 건네고, ‘인증샷’까지 찍어두었죠.” (안복진)

◆음악 싫어지면 팀 이름 바꿔야지=황수정을 제외한 3명은 아직 학생이다. 팀이 인기를 얻고 스케줄이 바빠지기 시작한 요즘엔 수업도 제대로 못나간다. “좋아한다는 마음만으로 어떤 일을 계속 해나간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도 느끼고 있다. “좋아서 하는 마음만은 어떻게든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넷 중 하나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면 하지 않으려 한다”는 게 조준호의 설명. 그래도 “우리들의 음악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았을 때의 희열, 모인 사람들이 음악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는 그 순간의 짜릿함”(손현)이 너무 좋아, 거리공연을 멈추고 싶은 마음이 없다. 아직은 “그냥 하다 보면 웃음이 나오는 것, 나도 모르게 나를 웃게 만드는 것”(안복진)이 음악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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