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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한국 영화, 미국 가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42호 02면

PIFF(부산국제영화제)나 SICAF(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 같은 곳에 가 보면 ‘인간 구름’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유명 외국 감독이 가운데서 걸어가고 그 주변을 사람들이 구름처럼 에워싼 채 따라가는 장면이죠. 10년 전쯤인가, ‘반딧불의 묘’로 유명한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다카하다 이사오가 방문했을 때 이 같은 광경을 목도하고 저는 우리 감독들은 언제 외국 나가서 저런 대접을 받나 부러워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바람이 현실이 됐습니다. 지난 20일부터 22일까지 미국 캘리포니아 채프먼대에서 열린 ‘제1회 채프먼 부산웨스트 영화제’에서였습니다. 주인공은 ‘놈놈놈’의 김지운 감독이었다네요.

이 행사는 미국의 명문 영화학교로 꼽히는 채프먼대 닷지 영화미디어예술대가 PIFF와 함께 개최한 행사입니다. PIFF에서 상영된 한국 영화 중 수작을 영화학도들에게 소개하는 자리죠. PIFF가 미국에 수출된 셈이랄까요. 무섭게 부상 중인 한국 영화계를 바라보는 할리우드의 시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박쥐’, 봉준호 감독의 ‘마더’,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 이두용 감독의 ‘최후의 증인’, 이충렬 감독의 ‘워낭소리’ 등이 폭발적인 반응 속에 상영됐다고 합니다. 또 박찬욱 감독은 영화 감독들에게 영감을 일으킨 감독에게 수여하는 제1회 ‘부산웨스트 아이콘상’을 마사 쿨리지 미국 감독협회 전 회장으로부터 수상했죠.

사실 미국 영화 시장은 높고 견고하기로 이름 높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자막이 있는 영화를 싫어하죠. 할리우드와 다른 문법을 구사하는 다른 나라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왜 한국 영화에는 이렇게 관심을 보이는 걸까요. 이 대학 이남 교수는 “한국 영화는 낯설지만 묘하게 낯설지 않다”는 미국 학생들의 반응을 전합니다. “할리우드식 장르 영화이면서 한국적 정체성을 갖추고 있고, 할리우드와 다른 기발한 방법으로 찍어 보여주는 맛이 있다”는 겁니다.
영화의 본고장에서 본격 러브콜을 받기 시작한 한국 영화. 도대체 어떤 꽃을 피우고 얼마만 한 열매를 맺을까요. 정말 정말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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