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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부즈맨칼럼] 유권자 참여 지면 늘려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독자들에게 양질의 정보는 양질의 먹을거리 못지 않게 삶의 질을 결정하는 일용할 양식이다.

지금 우리 독자들의 문제는 정보 절대량의 부족이 아니라, 쏟아지는 정보를 주체적으로 선별해 섭취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와 비판적 성찰력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과학기술 문명의 최신 단계라 할 정보화사회는 정보에의 접근을 아주 용이하게 하고 사람들간의 의사 소통을 촉진하기도 하지만 이와 동시에 인간을 정보 쓰레기더미에 파묻히게 하고 삶의 속도를 병적으로 빠르게 만들며, 인간소외를 재촉하기도 하는 경계해야 할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정보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언론이 공정한 보도와 바른 계도(啓導)를 통해 시민의 알권리와 비판적 성찰력을 증진하는 데 기여해야 할 책무가 더욱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연중 기획 '21세기로 맞추자' 의 일부로 게재된 'NGO가 권력의 옷 입어야 하나' 와 '30대 벤처 귀족사회 과연 건강할까' 와 같은 기획은 주제 선정, 토론형식과 기고 내용은 아주 유익하고 생산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기획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계도적 정신이 중앙일보의 다른 기사에서도 잘 구현되고 있는가.

중앙일보는 '시민광장 NGO' 면을 고정으로 편성하고, '시민의 힘-모두가 나서야 세상이 바뀐다' 를 구호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정작 지금 시민의 힘을 모아 탈(脫)지역주의.탈부패정치 선거 혁명을 위해 분투하고 있는 총선시민연대의 활동에 대해서는 배려가 부족한 것 같고, 그 역사적 중요성에 비해 너무 소홀하게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관련기사가 가뭄에 콩 나듯 하고, 총선연대의 활동이 부당하게 선거 공권력의 권위 붕괴에 관여하는 것처럼 기사화한 부분마저 보이기 때문이다.

세계의 유수한 언론들이 "한국에서 특별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며 큰 관심을 보이고 있고, 국내 경제신문에서조차 "지금 우리 사회는 시민혁명 중" 이라는 타이틀로 총선연대의 활동을 특집으로까지 다룬 것을 볼 때, 중앙일보의 이런 부분은 언론의 사명인 공정보도 및 바른 계도의 정신과는 상치되는 게 아닌가 싶다.

선거와 관련된 많은 기사들을 후보들의 유세나 득표활동 중심으로 보도하고 있고, 다분히 지역주의 정서를 반영하는 '민심' 을 별로 여과없이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권역별 판세를 보여준다고 하는 총선 여론조사도 지지 수치만을 단순 집계하거나, 어느 후보가 얼마나 앞섰다는 식으로만 보도하거나 또 앞으로 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조사의 기준이 무엇인지, 그 조사의 한계는 무엇인지 등을 알려줘야 하며, 이슈와 정책을 개발하고 이를 중심으로 여론조사를 해야 한다.

여론이란 본래 표출된 개인 의견들의 단순 집계가 아니라 공론(公論)이다. 공론이란 개인 및 어느 집단의 부분적인 지식과 이해관계가 시민사회의 비판적 토의와 상호작용 과정을 통해 걸러지고 다듬어져, 공적 객관성을 얻게 된 제3의 견해와 같은 것이다.

그 때문에 바른 공론의 형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사회의 비판적 토의 과정인데, 총선 여론조사에는 이에 대한 흔적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언론이 국민들이 바른 선택을 하도록 기여하려면, 마땅히 이슈와 정책 중심으로 보도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중앙일보가 각 당의 공약을 부문별로 분석한 것은 그 역할에 부응하는 일이다.

그러나 국민소환제와 40시간 노동제, 부유층 중과세 등을 공약으로 내세운 민주노동당과 3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민중대회위원회를 다룬 기사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선거 때는 '공약(空約)' 이 남발되기 때문에, 이를 다루는 기사는 그 실현 가능성에 대한 분석도 있어야 하며, 기존 정당의 안목을 뛰어넘는 더 나은 정책대안에 대한 논의도 있어야 한다.

언론이 담당해야 할 이같은 여러 역할 차원에서 중앙일보가 유권자 포럼을 확대하거나, 유권자와 전문가를 참여시킨 토론회를 더 많이 개최해 주기를 주문한다.

이병천<강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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