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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난 현대그룹 구도] '돌아온 몽헌' 막판 뒤집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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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현대그룹의 인사 파문이 정몽헌 회장의 판정승으로 막을 내리면서 현대의 후계 구도가 골격을 드러냈다. 정몽구 회장은 그룹 회장에서 물러나 자동차만 전념하며, 그룹 경영은 정몽헌 회장이 '유일 회장' 으로서 총괄케 됐다.

이익치 회장.노정익 대표의 원대복귀 결정으로 그동안 정몽구.몽헌 회장 형제간 분쟁의 초점이었던 금융계열사의 영유권은 몽헌 회장쪽으로 가게 됐고, 자동차부문의 그룹 분리도 더 빨라질 전망이다.

이익치 회장의 인사파문을 둘러싼 그룹의 내홍이 그간 혼선을 빚어왔던 그룹 후계 분할구도를 분명히 하는 계기가 된 셈이다.

24일 현대 발표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정몽구 회장의 현대경영자협의회 회장직 면제' 다.

현대경영자협의회는 현대가 사장단 회의를 없애면서 1998년 만든 그룹내 최고 경영자들의 의사결정 기구. 정몽구 회장은 삼촌인 정세영 회장에 이어 1996년 1월 그룹 회장이 된지 4년 만에 그룹 경영에서 완전히 물러나게 됐다.

정몽헌 회장은 98년 3월 현대 공동회장이 되면서 형인 몽구 회장과 국내.해외 부문을 나눠 맡아왔는데 이날 발표로 유일 회장이 됐다.

또 이번 분쟁의 핵심인 금융부문도 몽헌 회장이 자연스레 맡게 됐다.

현대는 현대증권.캐피탈.투신증권.투신운용.선물.기술투자.생명과 울산종금 등 금융사를 두고 있다.

보험.기업금융은 이미 계열 분리됐기 때문에 이들 금융 계열사 중 기둥이 현대증권이다.

현대캐피탈은 정몽구 회장 계열의 현대자동차가 대주주고, 현대투신증권은 정몽헌 회장 계열의 현대전자가 대주주로 이미 어느 정도 정리된 상태.

문제는 현대증권인데 이 회사의 최대주주는 현재 현대상선이며, 현대상선의 최대 주주는 정몽헌 회장이다.

따라서 정몽헌 회장 측근인 이익치 회장을 고려산업개발 회장으로 전보 내정했던 것은 금융 계열사의 경영권 문제와 직결돼 있다.

정몽구 회장측은 정몽헌 회장이 외국 출장 중이던 지난 14일 전격적인 내정 인사를 통해 증권 인수를 시도했었으나 24일 정주영 명예회장이 정몽헌 회장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금융계열사 경영권 장악 시도가 물거품이 된 것.

현대자동차측은 "앞으로 자동차산업이 해외 거대기업과 맞서려면 자금력이 필요하고 금융 뒷받침이 필수적" 이란 논리를 앞세웠었다.

몽헌 회장측에서는 그러나 이에 대해 "자동차부문과 증권 등 금융이 함께 가는 것은 이미 확정 발표한 소그룹 분리 방침에 맞지 않다" 는 입장을 보여왔다.

지난해 대북사업과 관련해 몽구.몽헌 계열간 영유권 문제가 생겼을 때에도 명예회장이 대북사업은 김윤규 현대건설.아산 사장을 비롯한 몽헌 계열 경영진이 맡는 것으로 교통정리를 했었다는 것.

또 정주영 명예회장의 몽헌 회장에 대한 신임이 두텁다는 점과 몽헌 회장이 이미 그룹 경영의 축인 구조조정위원회를 장악하고 있는 점도 이번 몽헌 회장쪽 승리의 요인으로 보인다.

실제 인사 파문이 인 뒤 구조조정본부는 "단순히 내정일 뿐" 이라며 발표를 미룬 채 몽헌 회장의 귀국을 기다렸고, 몽헌 회장 계열인 이익치 회장도 '공식 발표는 없었다' 며 현대증권으로 출근하는 뚝심을 보였었다.

현대는 지난해 4월 기아자동차.LG반도체를 인수하면서 올해 내에 자동차를 분리하고 2003년까지 그룹을 5개 전문 소그룹으로 분리, 사실상 그룹을 해체하겠다고 발표했었다.

곧 분리될 자동차부문은 인천제철 등 5~6개 관계사를 포함해 그룹내 매출 비중이 현재 30% 선이다.

한편 24일 발표로 내분은 수습단계에 들어섰으나 과제는 아직 많다.

우선 오너 일가가 인사 등 전권을 행사하는 등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맞지 않는 경영관행에 많은 비판이 쏟아졌기 때문에 이미지 쇄신이 시급하다.

또 그룹 내에서는 이번 사태에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잇다.

몽구.몽헌 계열 인사들간 쌓인 앙금도 풀어야 할 과제다.

현대가 24일 발표문에서 밝힌대로 '국민에게 사랑받는 기업' 으로 거듭날지는 이제부터의 숙제다.

김시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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