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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벤치에 앉아 읽는신문 제목까지 엿볼 수 있다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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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무인 정찰기 글로벌 호크.

지난 50년 동안 세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첩보전을 치러 왔다. 그러나 모든 것이 베일에 가려 있어 그 실체를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첩보전의 대명사인 첩보위성에 대한 정보가 조금씩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열적외선 센서 탑재해 밤에 활동… 미사일 발사 징후 다 보여 #군사 - 훔쳐보기·훔쳐듣기 ‘별’들의 전쟁 #전 세계 이메일·팩스·전화 90% 30억 건 가로채 듣는다 #세계 최대 규모의 감청망 ‘에셜론’의 위력

2003년 이라크에 대한 ‘충격과 공포’ 침공 당시 미국이 선제공격을 감행할 때 사용된 무기의 70%가 우주의 첩보위성이었다. 얼마 전 북한의 미사일 사건으로 전 세계가 들썩였을 때 처음 이 소식을 전한 것 또한 미국의 첩보위성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머리 위에는 수백 기에 달하는 각국의 군사용 첩보위성이 떠다니고 있다. ‘하늘의 지휘소’로 불리는 첩보위성에는 어떤 것이 있으며 또 그들은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첩보위성은 일반 위성과 어떻게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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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북한 대포동 1호 미사일 발사 장면.
1957년 10월4일 옛 소련이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지구궤도에 올려놓자 미국은 두려움에 떨지 않을 수 없었다. 우주공간에서 미국에 대한 각종 정보를 빼내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뒤질세라 1958년 첫 번째 위성인 익스플로러 1호를 발사했고, 이어 정찰(사진촬영) 목적의 위성을 쏘아 올렸다.

초기의 위성은 전파를 이용해 영상정보를 송부하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실제 필름으로 찍어 캡슐에 넣은 다음 대기권으로 떨어뜨려 회수하는 방법을 택했다. 물론 미국의 정찰기들은 위성이 발사된 후에도 수십 년 동안 러시아와 동유럽 상공을 비행하면서 군사현황에 관한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쿠바 미사일위기 때나 U-2 정찰기가 러시아 상공에서 격추될 때까지 이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는 일반인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1996년까지 미국은 정찰 목적을 위해 약 1000억 달러를 지출했다고 한다. 러시아도 이에 못지않은 비용을 투자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한 시골 도로에서 이뤄지는 물체의 이송과 산 속에서 벌어지는 미사일 동향을 미국은 훤히 알고 있다.

무서운 감시의 눈, 첩보위성 때문이다. 미국, 그리고 강대국의 다른 나라 엿보기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미국과 러시아는 수백 개에 달하는 첩보위성을 쉴 새 없이 쏘아 올려 지구 상공에 촘촘한 위성 첩보 네트워크를 구축해 놓았다.

6월에는 북한 외무성의 우라늄 농축 선언 이후 한·미 정보당국이 특수정찰기(WC-135W), 적외선 열감지 센서를 장착한 첩보위성과 인적정보망(HUMINT) 등을 총동원해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 활동 증거를 수집하기 위한 비밀작전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첩보위성이란 이처럼 상대편의 정보나 형편을 몰래 알아내기 위해 사용하는 인공위성을 말한다.

웬만한 선진국에서 첩보위성을 띄우는 요즘의 상황은 우주공간에서 소리 없는 공격이 벌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남의 나라 심장부에 있는 주요한 건물 사진을 찍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공격이다. 그것은 마치 상대방에게 무기를 들이대고 위협하는 듯한 효과를 낸다. 오늘날 첩보위성의 영상기술은 대단히 발전했다.

보통 위성영상이란 지구 표면을 촬영한 디지털 사진을 통칭한다. 위성 카메라가 일반 카메라와 다른 점은 다양한 파장정보를 촬영한다는 것. 가시광선 파장(0.4~0.7μm)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적외선(0.75~3μm)이나 초단파(1~10m) 영역까지 수집한다. 위성영상이 군사분야는 물론 농업·기상·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구체적 정의는 없지만, 첩보위성은 물체 식별 능력이 1m 이하의 해상도를 갖춘 위성영상을 이용한다. 이 정도는 돼야 적국의 군사동향과 작은 군사시설 등을 판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디지털 해상도는 1m급, 5m급, 30m급 등으로 표현하는데 숫자가 작아질수록 더 작은 지상물체를 판독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1m급이라는 말은 화소 1개가 1㎡를 표현한다는 의미인데, 지상 물체의 크기가 가로 세로 1m 이상이면 어떤 물체인지 알아낼 수 있다는 뜻이다. 같은 정도 크기의 물체에 대한 윤곽을 뚜렷이 구별할 수 있는 정도라고 이해하면 된다. 위성사진 분석가들은 50cm×50cm 정도의 공간해상도면 승용차나 손수레를 뚜렷이 구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위성영상은 그 종류나 처리 방식에 따라 지표면은 물론 지하, 해저지형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에 전략적 계획을 세우는 데 매우 중요하다. 위성의 전략적 중요성을 간파했기에 세계 각국이 관련 기술 개발을 서두르는 것이다. 하지만 막상 영상정보를 수집하고 처리하는 데는 상당한 기술력과 막대한 비용, 시간이 든다.

특히 일찌감치 핵심 기술을 확보한 나라들은 관련 기술을 극비에 부쳐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일이 그리 만만치 않다. 대부분 첩보위성은 열적외선 센서를 탑재하고 밤에 활동한다. 낮에는 태양복사열과 체온 사이에 간섭현상이 일어나 인체를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낮과 밤에 모두 활동하는 첩보위성도 있다.

▶▶▶다른 나라의 정보를 어떻게 빼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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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방정보국이 운용하는 첩보위성 KH(Key Hole)-12.
첩보위성은 육지·바다·하늘에 배치된 자산을 상호 보완적으로 동시에 운용해 미사일 발사 징후를 빈틈없이 파악한다. 고공정찰기로 24km 이상의 고도에서 북한 내륙의 영상을 촬영하고, 미사일 발사장 주변의 무선 통신을 감청해 발사장의 준비 상황을 샅샅이 들여다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첩보위성은 다른 나라의 정보를 어떻게 빼낼까? 인공위성은 운용 목적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다. 예를 들어 무궁화위성처럼 방송통신 중계 목적으로 운용하는 위성이 있는가 하면 GPS 위성처럼 위치정보 제공을 위해 발사한 위성도 있다.

또 대기 현상을 분석하는 과학위성이 있는가 하면 천체 사진을 찍기 위한 위성도 있다. 이 가운데 백미는 첩보위성, 조금 더 나아가면 정찰위성이다. 첩보위성은 다른 나라의 지상 촬영을 주 임무로 한다. 군사용으로 사용하는 위성에는 정찰위성·조기경보위성·도청위성·군사통신위성·항행위성·군사기상위성 등이 있다.

넓게 보면 모두 첩보위성에 속한다. 그러나 좁게 볼 때 첩보위성은 정찰위성·조기경보위성·도청위성만을 가리킨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정찰위성이다. 정찰위성은 작전에 필요한 자료를 얻기 위해 수백 km 상공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며 적의 동향이나 지형을 살피는 위성이다.

스파이위성으로도 불리는 정찰위성의 위력은 뉴욕 센트럴파크 벤치에 앉아 뉴요커가 읽는 신문 제목을 수백 km 고도에서 판독해낼 정도다. 정찰위성은 보통 고도 600~800km의 지구 저궤도에 위치한다. 어느 지역에서 누가 무엇을 하는지 알아내려면 가능한 한 고도가 낮아야 하기 때문이다.

위성이 지면과 가까워질수록 영상의 해상도가 높아진다. 그래서 정찰위성은 자기 궤도에서 편하게 셔터만 눌러대지 않고 때때로 상당히 급격한 운동을 하며 최대한 지구 가까이 내려오는 방식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미국 공군우주사령부가 관리하는 KH(Key Hole)-12라는 정찰위성은 평상시에는 600km의 고도에 있다 목표가 정해지면 200∼300km 높이로 내려와 목표지점의 영상을 촬영하고 다시 제자리로 올라간다. KH와 같은 정찰위성은 보통 자체 동력을 이용해 자주 궤도를 변경하기 때문에 수명이 짧은 편이다.

대신 해상도 10cm(10cm를 하나의 픽셀, 즉 점으로 인식한다는 뜻)급의 최고 광학 카메라를 사용해 지구를 마치 ‘열쇠구멍(Key Hole)’으로 들여다보듯 지상에 있는 가로 세로 10∼15cm 크기의 물체까지 정밀하게 식별해낸다. 이 정도의 해상도라면 지상의 남자와 여자를 구별해낼 수 있고, 자동차 번호판도 읽을 수 있다.

한마디로 웬만한 지상목표물은 KH위성의 ‘눈’을 피해갈 수 없다. 고도 3만6000km의 정지궤도에 떠 있는 방송위성이나 통신위성과 달리 첩보위성은 세밀한 정보를 얻기 위해 가능한 한지구 가까이에서 지상의 물체와 움직임을 탐지해야 하고, 또 고도 300∼600km에서 지구의 강한 인력에 끌리지 않고 첩보를 수집해야 한다.

그러려면 대단히 빠른 속도로 지구를 돌아야 한다. 그래서 첩보위성은 하루에 지구를 14바퀴 반 정도 돌 만큼 빠른 속도로 선회하며 정보를 수집한다. 500km 상공인 경우 초속 약 8km의 속도를 유지한다. 미국 스파이위성이 하루 한두 차례 한반도 상공을 지나며 적정(敵情)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며 찍은 수백 장의 고해상도 위성사진은 실시간으로 미국 국방부로 전송된다.

이 중 일부가 ‘제한적으로’ 우리에게 전달된다. 이 때문에 북한은 스파이위성이 지나가는 시간을 피해 군사훈련을 한다고 한다.차세대 첩보위성은 지금처럼 ‘키홀’과 같은 대형 정찰위성을 지속적으로 배치하면서도 정보의 질과 경제성을 고려한 새로운 개념이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색깔 식별 능력이 뛰어난 초분광센서(HSI)를 탑재한 첩보위성이 개발될 것이고, 저가의 소형위성을 이용한 감시정찰체계가 일반화할 전망이다. 예를 들어 수십 기의 소형위성을 고르게 배치해 지구상 어느 곳이든 24시간 지속적으로 감시한다든지, 소형 첩보위성을 몇 기씩 짝지어 관심지역을 집중적으로 정찰할 수 있게 된다.

글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bluesky0puv@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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