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업계, 환위험 피하는 환헤징 노력 미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23일 원.달러 환율이 연중 최저치인 1천1백9. 8원으로 폭락하는 등 외환시장이 요동치는 데도 무역업계가 스스로 환위험을 피하는 환헤징 노력은 여전히 미미하다.

재정경제부는 산업자원부가 운영하는 무역전자상거래 사이트 '실크로드21' 에 환위험 관리를 위한 상담코너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용실적은 하루 10건에도 못미친다.

환헤징은 무역거래시 네고와 돈이 들어오는 시점이 차이가 나 그 사이 환율변동으로 볼 수 있는 환피해를 미리 막기 위한 것. 보통 계약 당시 기준환율에 따라 선물거래소나 은행을 통해 미리 외환을 사거나 팔아두는 선물환을 이용한다.

대외경제연구원이 무역업계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25% 정도만이 선물거래를 통해 환헤징을 했다. 일본 무역업체의 70% 이상이 헤징을 하는데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다.

현대종합상사.삼성물산 등은 10만달러 이상은 사내선물환을 이용하도록 권고하지만 이들 회사도 들어오고 나가는 외환의 절반 정도가 헤징되고 있을 것으로 추산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헤징 비용이 많이 들고▶중소업체의 경우 환리스크 관리자 구하기가 힘들고▶선물거래 이후 결과적으로 손해가 나면 이를 손실로 보는 관행 때문에 헤징이 힘들다고 지적했다.

중소 무역업체를 운영하는 김민영씨는 "은행은 50만달러 기준에 30% 정도 담보를 요구해 엄두도 못낸다" 고 말한다.

선물거래소도 1개월.3개월 등 표준기간 상품만 있어 원하는 날짜에 맞추기 힘들다고 그는 지적했다.

대형종합상사 영업부서 간부인 李모 부장은 "달러를 미리 팔아놓았다 달러가 들어오는 시점에 환율이 오르면 손해를 봤다며 임원들이 싫어하기 때문에 환헤징은 잘해야 본전" 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환율이 불안할 때는 헤징을 하고, 안정적인 경향을 보이면 헤징하지 않는 경향이 뚜렷하다.

한국선물거래소에 따르면 환율 등락이 심했던 지난 1, 2월과 이달 초까지는 하루평균 5천건 안팎으로 거래가 급증했다. 하지만 환율이 하향안정세를 보인 이달 중순 이후에는 거래량이 2천~3천건으로 줄었다.

현대경제연구원 조홍래 이사는 "1997년 환율의 자유변동제 실시 이후에도 기업인들은 환율에 관한 한 정부에 대한 의존심을 떨치지 못했다" 며 "환헤징 비용을 손익으로 보지 않고 비용으로 보는 최고경영인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고 말했다.

양선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